전향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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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타임즈 | 2012.01.11 16:36 |

'운동권 출신'이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운동권 출신들은 전향했거나 전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드시 둘 중 하나다. 여기서 운동권이란 8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던 '좌익운동'과 이후의 '시민운동'을 포함한다.

 

전향했다면 그것은 운동을 팔아먹은 것이다. 운동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개인의 정치적 입신을 위한 수단이 된 것이다. 전향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운동의 연장, 변형에 지나지 않다. 때문에 그들은 정치를 운동의 무대로 간주한다.

 

운동은 '전부'를 거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관념적이지만은 않다. 신앙적이지만은 않다. 그들을 '혁명가' 또는 '시민운동가'로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배고픔도 참았고 도피, 구속도 마다하지 않았다. 분신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투쟁도 있었다.

 

» 성남미디어 마인황 칼럼니스트   ⓒ수도권타임즈

그러나 좌익운동은 패배했다. 권력의 탄압으로? 아니다. 어이없게도 좌익운동은 스스로 패배했다.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자동 소멸해버린 것이다. 패배의 원인이 탄압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있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첫째, 좌익운동은 모순적인 자신의 현실을 토대삼지 않았다. 이북 등 기존 사회주의를 모델로 삼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둘째, 좌익운동은 사상적으로 취약점이 있었다. 그 결과, '자기 상실'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로부터 두 가지 경로가 생겨났다.

 

하나의 경로는 분명해진 두 가지 사실을 곱씹어보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대안이 아니다. 사실의 역사가 검증했다. 무엇이 대안인가? 사상은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그 자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사상으로 초월할 수 없는 토대적인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인가?

 

이 곱씹는 과정은 개인적으로는 이후 삶이 '덤'으로 나타난다. 좌익운동의 패배는 거기에 삶을 바친 자들에게는 어찌되었든 전부를 잃은 것이다. 그 전부가 상실된 삶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전부란 양적 개념이 아니라 질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른 경로는 분명해진 두 가지 사실을 곱씹지 않은 채 사회적 삶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그 형태는 전문가에서부터 평범한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정치에 뛰어드는 것도 그 중 한 가지 형태임은 물론이다.

 

전대협 출신이든 비밀조직 연루자든 486세대 정치인의 상당수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과거 회귀적'이다. 이들의 경력에는 예외없이 과거 운동이 경력으로 세일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운동이 개인의 정치적 입신을 위한 '현재적 도구'로 전락된 것이다.

 

시민운동은 어떤가. 신용하기 어렵다. 잘못 가는 정치, 경제, 문화의 '외부'로서 자리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원에서 볼 때 시민운동은 시대 변동에 맞춰 자체 성장한 측면도 있지만, 좌익운동을 포함한 80년대 민주화운동이 모태가 된 측면이 강하다.

 

오히려 시민운동은 잘못 가는 정치, 경제, 문화로 '내부화'되고 있다. 개인들의 어소시에이션이 아니라 지배적인 소수의 계략과 명망, 기업이나 국가의 후원에 의존하기 일쑤다. 게다가 깨인 시민이 아닌 몰개인적이고 반어소시에이션적인 대중에 영합적이다.

 

선호하는 정파의 이중대 역할도 다반사다. 좌익운동 출신처럼 정치를 탐하는 무리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시민운동'에서 '시민정치'라면서. 골계다. 아니 '비극'이다. 역으로 그것은 그들이 했다는 시민운동의 취약성을 여지없이 폭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운동권 출신들은 전향했거나 전향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따라서 이들에게서 전향이란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에게는 전향이든 비전향이든 전향이란 문제를 곱씹어보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전향이란 무엇인가? 삶의 전부를 걸었던 것을 전복하는 것이다. 전복은 무가 아니다. 전복은 대안의 모색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도로자본주의일 리 만무하다. 시민운동이 아니라고 정치일 리 만무하다. 무로 그친 전복은 '변절'일 뿐이다.

 

비전향이란 무엇인가? 삶의 전부를 걸었던 것을 전복하지 않는 것이다. 왜 전복하지 않는 것일까? 실은 삶의 전부가 아니었거나 그것을 곱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주의의 패배를 내심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시민운동을 주변화하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복지국가'가 대안일 리 만무하다. 국가권력에 기대어 뭘 해보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케인즈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다르게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다. 그것은 개인의 약화, 사회의 약화를 초래할 뿐이다. 시민운동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계속해서 전향은 '변절'로 출현하고 있다. 비전향은 '기만'으로 출현하고 있다. 전향이든 비전향이든 운동권 출신들은 전향문제를 곱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권력에 동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싸우면서 괴물이 된다.'(니체)

 

낡은 정치를 갈아엎겠다고? 한나라당 정권을 갈아엎겠다고? 골계다. 전향이든 비전향이든 운동권 출신들은 외부가 없다. 외부는 자신을 포함한 개인, 사회에 있다. 이들은 바닷가 한줌의 모래로 묻혀버릴 것이다. 그것이 역사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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