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선 안 새냐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1.10 08:54 |

오늘날 우리는 공자의《논어》를 읽는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는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는다. '고전'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어떻게 해서 시공을 뛰어넘어 읽히는가. '다르게' 읽혀지기 때문이다. 다르게 읽혀진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작가와 작품, 작품과 독자라는 두 영역을 동일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예술의 가치가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는 정신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 있고, 직접적인 교섭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예술에 대한 고찰》)

 

프랑스 비평가이자 사상가인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1년~1945년)의 말이다. 요컨대 그는 작품(예술)이 지닌 가치의 근거를 작가-작품이라는 생산과정, 작품-독자라는 소비과정, 이 두 과정이 서로 '분리'되어 있고 '불투과적'이라는 점에서 찾는다.

 

발레리가 말한 것은 고전이 계속해서, 동시에 다르게 읽혀지는 이유를 밝혀준다. 그러나 그가 말한 것은 예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정치에도 그대로 들어맞기 때문이다. 성남시장 이재명을 보자. 그는 '사례적'이기 때문이다.

 

» 성남미디어 마인황 칼럼니스트   ⓒ수도권타임즈

그는 성남시의회에 의해 의결된 2012년도 수정예산을 두고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의사만을 말한다. 언론과 시민을 상대로 말이다. 그뿐이랴. 심지어 그는 '의회가 시장과 조건없이 만나 대화하자'는 제안까지 연거푸 내놓았다. 이 역시 언론과 시민을 상대한다.

 

그가 정치를 '투과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위에서', 즉 '왕의 위치'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정치를 투과적으로 보기에 그는 오직 자신의 판단과 의사만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전혀 투과적이지 않다. 그것을 단박에 깨우쳐 준 정치인이 장대훈 의장이다.

 

"이재명 시장이 말은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집에 불을 질러 버리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집안에서 먼저 대화해 해결할 생각은커녕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서 언론플레이나 한다. 얼마나 이중적인 태도냐."

 

6일 기자회견을 통해 장 의장이 말한 것이다. 100명의 이재명을 합쳐도 한 명의 장대훈에 미치지 못한다. 충분히 그런 가치가 있는 말이다. 장 의장의 명료한 이 한 마디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첫째, 그가 수정예산에 있어서나 조건없이 만나 대화하자는 제안들에 있어서나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의사만을 늘어놓는 것은 '의회용'이 아니라 '언론용', '시민용'이라는 것이다. 즉 그가 정치를 투과적으로 본다는 것은 현실에선 '언론플레이', '정치선동'에 지나지 않다.

 

둘째, 그의 발언은 의회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회에선 '씨알도 안 먹히는' 발언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장 의장의 말대로 "집안에서 먼저 대화해 해결할 생각은커녕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시장을 의원들이 어떻게 바라볼 지는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첫째의 의미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면 둘째의 의미는 '무능력의 반증'이다. 자신의 파트너는 '여왕님'(지자체 최고의결기구) 아니신가. 바깥에선 그가 왕(지자체 대표)처럼 보일지라도 여왕님을 무시하고 여왕님으로부터 대접받지도 못하는 남자가 남자일 리 만무하다.

 

그가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시간을 소모하는 한, 장 의장이 '도려내서 말한' 그의 '이중적인 태도'는 얼마 가지 않아 언론, 시민에게 그대로 비치게 될 것이다. 일반적인 정치적 평가가 내려지게 될 것이다. 다음 경구는 만고불변이기에.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선 안 새냐.'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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