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형해화된 학교 민주주의  
성남지역 학교 교직원회의 양상 조사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12.31 15:03 |

 <사례 1>

성남 본시가지에 위치하고 있는 한 초등학교 교직원회의 시간. 회의를 주재하는 교무부장이 “학교 화장실 변기를 좌변기(앉는 변기)로 할 것인가, 화변기(쪼그리는 변기)로 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줄 것을 요청했다. 교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결국 거수로 표결을 실시하게 되었지만, 투표에 참여한 교원의 수는 좌변기 찬성과 화변기 찬성 모두 합쳐 전체 참여자의 1/5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손을 들지 않고 기권표를 던진 한 교사는 “물론 화장실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정착 창의적 의견을 모아내고 갈등을 조절해야 하는 각종 학교 교육과정이나 업무 처리 등은 관리자들이 독단적으로 하며 이러한 사안들에만 표결을 실시하는 의도를 모르겠다”며, “오늘의 표결 사례가 ‘민주적 의견 수렴’의 서류상 ‘실적’으로 둔갑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한 학교의 교직원회의 모습.   ⓒ수도권타임즈

<사례2>
판교에 위치하고 있는 한 중학교의 교직원회의 시간에는 담임 교사가 들어가는 아침 조회 시간의 활용 방안을 놓고 잠시 알력이 빚어졌다. 담당 교사가 앞으로는 학교 차원에서 요일별로 예절 프로그램과 독서 프로그램, 한자 학습 등을 시행할 것임을 전달하자, 한 교사가 일어나 “아무런 사전 논의도 없이 담임 교사가 학생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학급의 특색에 맞는 고유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시간을 빼앗는 이러한 통보는 독단이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교사들은 관심 없다는 듯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침묵을 지켰던 한 교사는 “어차피 회의 시간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새로운 방안을 제안해봤자 검토해보겠다고 하고는 업무 메신저를 통해 원래 하려던대로 지시가 내려올 것”이라며 “차라리 회의라도 빨리 끝나게 가만 있는게 낫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어보었다.

 

<사례 3>
분당에 위치하고 있는 한 인문계고의 교직원회의 시간. 낡은 주입식 교육을 21세기형 새로운 교육으로 혁신하기 위한 “2013년 경기교육 5대 혁신 방안”에 대한 전달 연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연구부장은 약 20여분에 걸쳐 도교육청에서 내려온 자료를 ‘읽어’ 내려갔다. 이를 듣는 대부분의 교원들은 무표정하거나 시무룩한 표정들이었고, 책을 가져와 읽거나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연구부장은 자기도 하고 싶지 않지만 (교육청) 지시사항이라 꼭 알려야 된다고 누차에 걸쳐 언급하며, 시간 부족을 내세워 ‘5대 추진 과제’ 중 하나였던 “추진과제3-학교 민주주의 정착으로 학교자치 활성화” 부분은 생략했다. ‘회의’가 끝난 후 한 교사는 “정말 일하기 싫게 만드는 법도 가지가지다. 가장 혁신적 내용을 가장 혁신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런 식으로 일방통행할거면 그냥 자료를 나눠주지 뭐하려 모아놓고 진을 빼가며 ‘회의’를 하나?”라고 반문했다.

 

‘민주공화국’인 우리 나라에서 학교는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요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오늘날의 우리네 학교의 민주주의는 실질적으로 작동되기보다는 각종 지침이나 협의록 같은 ‘서류’ 속에만 존재하는 형태로 형해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식민지시절 형성되어 독재정권시절 강화되어 온 상명 하복의 권위주의적 관료적 질서가 잔존해 있다.

 

여전히 학교장의 권한은 ‘전제 왕권’에 비견될 정도로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고, 이는 종종 책임을 두려워하는 관리자들의 보신주의나 권한을 남용하는 관리자들의 비리와 부조리로 불거져 나오곤 한다. 또한 이러한 교무실의 권위주의 구조는 교사가 학생을, 학교가 학부모를 만나는 순간에도 그대로 재현되게 된다.

 

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 성남지회는 학교 민주주의의 현황을 점검하고, 실사구시에 바탕을 둔 대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지난 2012년 11~12월 성남 지역의 초중고 137개 학교 중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74개교(초26, 중25, 고 23)의 교직원회의 운영 양상에 대한 연구 ․ 조사 활동을 벌였다(혁신학교 및 혁신학교 예비지정교 10개교가 포함). 설문지법에 따른 양적 연구를 기본으로 삼고, 몇 개의 표집 학교들에 대해서는 질적 연구 방법인 심층 상담법을 병행하여 시행한 이 연구 ․ 조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성남 지역 관내에서 교직원회의를 정기적으로 하는 곳은 조사대상교 74개교 중 64.9%인 48개교였다. 42.7%(32개교)의 학교들이 교직원회의를 월 1회 개최하였으며. 월 1회도 열지 않는 곳도 6.7%(5개교)나 되었다. 1회 교직원회의 소요시간은 평균 44.5분이었다. 그러나 회의록을 작성하여 교직원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책임 있게 집행하는 학교는 4%인 3개교에 불과했다.

 

2. 조사대상교 74개교 교직원회의의 회의 내용은 관리자의 일방적 훈계 13.5%, 업무 지시 및 전달이 74%로 주축을 이루었고, 토론은 12.5%에 불과했다. 그나마 혁신학교 및 예비지정교 10개교를 제외할 경우 토론의 비중은 7.3%로 한자릿 수로 급감하였다. 회의 참여(발언)의 비중 역시 교장, 교감 등 관리자들의 비중이 36.5%, 부장교사의 비중 51.4%였으며, 역시 평교사들의 비중은 12.1%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혁신학교 제외시 평교사 참여 비중은 역시 한자릿 수인 9.8%로 급감했다.

 

  ⓒ수도권타임즈

이번 연구 ․ 조사를 총괄한 임진 전교조 성남지회장은 “비록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학교 현장의 민주주의 형해화 현상이 실증적으로 입증되었다”며 “이러한 참여와 소통 부재로 인한 학교 내 갈등과 교직원들의 사기 저하는 교원들의 창의성과 책임감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하며, 높은 경쟁률의 ‘임용고사’를 통과한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있는 공교육 현장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은 이유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집단지성과 자발성에 바탕을 둔 내실 있고도 지속가능한 책임 교육, 즉 학교혁신을 위해서는 ‘학교 민주주의’의 실질적 구현과 이를 위한 제도상의 정비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며, 특히 “교육의 질이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라는 면에서 교사들이 민주주의를 체감하는 학교 민주주의의 구현은 곧 일상 속 민주 시민 교육의 내실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수도권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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