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오염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6.20 20:46 |

문자가 먼저이고 마음은 나중이다. 그 역은 아니다. 그 역으로 잘못 아는 것이 '음성중심주의'다. 글이라는 자기 표현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신앙이다. 음성중심주의에 빠지면 글쓰기가 그 스스로 무수한 변형을 일으키는 과정이라는 실제의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글쓰기는 의도라는 마음의 산물이 아니라 글이 글을 쓰는 과정이다.

 

음성중심주의가 위험한 것은 자기가 쓰는 글을 의심하지 않는데 있다. 나아가 그 글은 단지 자기 사고의 산물에 지나지 않다고 간주하는데 있다. 이렇게 되면 남이 쓴 글도 그 의도만을 엿보려 할 뿐이다. 이런 태도가 고착되었을 때 외부세계를 나의 생각대로 빚어내는 '독아론'이 성립한다. 독아론자야말로 그 외관이 어떠하든 '맹신자' 그 자체다.

 

이런 의미에서 독아론은 자기가 사용하는 '모국어'와 긴밀한 관련을 갖는다. 지금 한국인들은 한국어에 능통하다. 능숙하게 말하고 능숙하게 쓴다. 그러나 적어도 100여 년 전 한국어를 능숙하게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문자를 쓰는 사람들은 대개 재래의 또는 새로운 지식인들로 한문이나 일본어를 썼기 때문이다. 언문일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근대문학의 출발점에 있었던 소설가 김동인은 "소설을 쓰는데 가장 먼저 봉착한 문제가 용어"라면서 "구상은 일본말로 하되 쓰기는 조선글로 썼다"고 고백했다. 이 고백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여기서의 조선글은 언문일치의 결과로 지금 누구나 능숙하게 말하고 쓰는 한국어가 아니라는 점, 즉 사실상 '외국어'였다는 의미다.

 

오히려 반대로 이미 언문일치를 이룬 일본어가 실제 모국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소설을 쓰는데 있어서 사실상 모국어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당시의 조선글은 조선어와 일본어, 조선어와 한자, 일본식 영어표기, 일본음의 조선글 표기, 일본 한자음의 조선식 독음, 일본어 용어의 조선어 뜻 표기 등 중구난방이었다.

 

일본어를 쓸 줄 알았던 김동인이 토로한 것은 이런 '자기 표현'이라는 문자표기상의 어려움이었다. 따라서 한국근대문학 초기의 소설들은 그 표기법이 조선글의 사용에서 나타난 중구난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지금의 한국어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소설이라는 글쓰기 양식 자체는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구의 새로운 문화였다.

 

당시의 조선글이 모국어가 아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모국어로 자기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음성중심주의가 가당치 않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음성중심주의는 역사적으로 볼 때 현재의 사실에 빠져 과거에도 그랬다고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의식상의 전도현상에 지나지 않다.

 

음성중심주의는 독아론이라는 왜곡된 사고태도를 낳는다. 그 역은 아니다. 음성중심주의는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듣는 '자기회전'을 벗어나지 못한다. 문자를 수단으로만, 따라서 문자로 번역되는 음성을 중심 삼기 때문이다. 횡횡하는 사고들의 99.9%는 음성중심주의에 오염되어 있다. 그것을 깨달은 눈은 보기 힘들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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