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전략의 종말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5.04 10:40 |

오리지날은 카피보다 선행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이 상식은 서구 못지않게 한국사회에서도 이미 흔들려 버렸다. 예를 들어 상품의 생산과 소비의 위계가 역전 또는 모호해진 것이 그렇다. 이는 소비가 필요에 연결되지 않고 충동이 배회하는 회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장 보드리야르가 말했던 '소비사회론'의 골수다.

 

"원자력발전소의 진짜 위험은 불안전, 오염, 폭발이 아니라 발전소를 중심으로 방사되는 극대의 안전시스템, 모든 영토 안에 더욱더 밀집하여 펼쳐지는 통제와 저지의 얼음장같이 평평한 면, 기술적인·환경보호론적인·경제적인·지정학적인 평면이다. 이로부터 원자력발전소는 절대안전의 모델이 세공되는 저지의 모델이다."(《시뮬라시옹》)

 

그가 소비사회론의 연장선에서 말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이 '저지전략'이다. 원자력 발전소가 위험한 만큼이나 그것을 저지하려는 반작용이 있다는 것이고 이 저지작용에 의해 어떤 옴짝달싹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거리가 좁혀들어 더 이상 움직일 거리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그 함의는 '옴짝달싹못함'이다.

 

저지전략의 함의가 적용되는 사례는 많다. 두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정보통신의 발달로 일반화된 익명게시판의 경우 당초 의도는 저마다 다름의 표현인데 그 다름은 흔히 다름을 분간할 수 없는 매스(mass, 덩어리)로 나타난다. 논쟁이나 글쓰기에서 의미를 명확히 하면 할수록 의미가 투명해져 더 이상 새길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비유컨대 흉내를 잘 내는 원숭이가 너무 흉내를 잘 내는 나머지 물속에 빠진 달을 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범주(凡舟)스님은 이 비유를 선화(禪畵)로 드러냈다. 이 선화에는 물속에 빠진 달을 구하려는 원숭이 그림과 함께 이런 게송(偈頌)이 실려 있다. '莫求水中月 眞月汝心中(물속의 달을 구하려 하지 말게, 진짜 달은 그대 마음속에 있네).'

 

오래 전 이 선화를 나무에 새겨 기자 일을 하는 후배에게 선물한 일이 있다. 그 후배가 아직도 전하는 말 한 마디가 없는 것으로 보아 열심히 씨름 중으로 믿고 있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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