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다(多)같이 생각해보자.  
이 시대(時代)의 효자(孝子)이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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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타임즈 | 2024.03.08 15:04 |


우리다()같이 생각해보자.


이 시대(時代)의 효자(孝子)이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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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며칠전 지인으로부터 점심을 하자는 전화를 받고 사양했다. 이유는 동석자 중 이 시대의 효자인 이남열 씨를 보기가 미안해서였다. 필자가 보는 이남열 씨는 효심이 남다른 이 시대의 젊은이로 불효를 한 필자가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남열 씨의 민원이 원만히 해결되기를 처음부터 바랐다. 이남열 씨의 민원은 우리도 이남열 씨 같이 조상님들을 모신 묘나 사당이 있어 일반 민원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금이라도 이남열 씨가 말하는 자신은 불효자라는 탄식이 없게 해결되기를 바란다. 지금도 이남열 씨는 태안군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서로 웃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이남열 씨의 효심을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설운도의 노랫말처럼 이 사람을 아시나요? 라고 많은 이들에 물어보고 싶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부모님에 대한 효심(孝心)과 형제 간의 우애가 옛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이남열 씨 같이 효심이 강한 사람을 보면 예사로 안 보인다. 


이남열 씨의 효심(孝心)은 모함(謀陷)과 거짓, 불효(不孝)와 살인(殺人)사기(詐欺)와 고소(告訴내로남불과 이기주의(利己主義보복과 몽니가 판치는 시대의 우리는 이남열 씨의 효심(孝心)을 본받자. 신체발부(身體髮膚)수지부모(受之父母)라 했다. 우리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와 효()를 중시하는 이남열 씨를 우리 다(같이 생각해보자


백화산 밑에서 송기(松肌꺽어 먹고, 밭둑의 삘기와 길섶의 그령을 뽑아먹던 문맹(文盲)시대에서나 볼 수 있던 이남열 씨의 효심(孝心)을 본받자. 이남열 씨는 젊은 세대(世代)가 말하는 꼰대도 아니다. 약 3년여 전부터 부모님에 대한 불효(不孝)라며 조석(朝夕)으로 차량에 모신 영정(影幀앞에서 눈시울을 붉혔 왕조시대를 방불케한 효자다. "불효자는 웁니다." 라는 진방남의 노랫말처럼 울음으로 불효를 사죄(謝罪)하고 회향의 천배()로 불효를 반성하며, 끼니를 거르며 불경(佛經)을 읽던 이남열 씨의 효심을 우리 다(같이 생각해보자


필자가 이남열 씨를 만난지는 약 3년 전 즈음으로 기억된다. 누구의 소개나 이해관계로 만난 게 아니다. 장애(障碍)가있는 () 옆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차량방송을 듣고 만났다. 이 시대에는 볼 수 없는 형제(兄弟)간의 우애(友愛)와 부모님에 대한 효심(孝心)으로 호소(呼訴)하는 이들 형제의 모습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들 형제의 절규(絶叫)는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이들의 절규는 모친(母親)을 모신 수목(樹木)이 태안군이 발주한 주기장 공사로 오간데 없다는 호소였다. 이들의 효심(孝心)에 필자는 감동했고 효심 만큼이나 박학다식(博學多識)해 많은 것을 배운다


내가 본 이남열 씨는 이 시대에 만연한 상석하대(上石下臺)의 변명과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이런 저런 소리가 나고 만남을 주저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 다(같이 생각해보자 


올해 갑진용(龍)년은  값진용(用)년으로 살수없을까를 이남열씨의 주장처럼 왜 법대(法臺앞에서야 하고, 왜 대화가 아닌 맞불시위인가 라는 물음에 민초들이 믿고 신뢰하는 공직사회의 답이 궁금하다. 공직사회가 주장하는 공직자의 인격과 근무환경이 보호돼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새는 새총으로 잡고 토끼는 몰아서 잡는 아량도 필요하다. 새를 대포로 잡는 격이 돼서는 안된다.   


공직자들도 부모 형제가 있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아닌가? 이남열 씨의 입장을 역지사지로  돌아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부탁이다. 상사이기는 부하는 없지만 군수를 지근에서 보좌하는 참모들은 진언을 해라. 군수가 자동차의 내비처럼 주민과 지역 조직과 외부일을 전부 알 수가 없기에 그렇다.  


선출직이 아닌 임용직의 부군수를 포함한 공직자들은 조직과 지역에 흔적보다는 족적을 남기는데 노력하라. 많은이들이 보고있다. 허재권, 최군노 같은 선배들을 만나 배워라.   


또 외부 전화를 피하며 복지부동하는 공직자가 있다면 자리을 고민하라. 유능한 주무관들이 보고 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모래만도 못함을 알라. 요령이 많다고 유능한 공직자는 아니다. 올해는 지상전(紙上展)보다는 값진 대화를 하는 값진 년이 되라. 보복과 몽니로 오해받지 말고 대화를 하라. 또 쓴소리하는 사람을 보복하고 이기려 하기보다는 경청하고  수용하며 지는 법을 배워라. 2024 갑진년을 2024 값진년으로 살고, 갑진용(甲辰龍)년을 값진용()년으로 바꿔라. 침묵하는 주민들이 보고 있다. 


값진년이 되기 위해서는 태안군 공직사회가 지금보다 더 많이 변해야 한다. 특히 선출직들은 생각을 바꿔 지역과 자신을 봐라. 준수한 미모와 청산유수같은 달변, 번개 같은 두뇌 회전에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왜 소리 가 나는가?  진실이 없어서인가? 주민이 무식해서 인가? 


우리 다 같이 생각해보자. 이남열 씨 민원에 맞불시위와 법대(法臺)앞에 서게 하는 게 옳은 것인가를. 또 공직자들이 이남열 씨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민원인의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민원이요, 잠재적인 소비자이며, 잠재적인 장애인이다. 공직자도 퇴직하면 주민이요 민원인이다. 


모두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만 이남열 씨 만한 이유가 있었는가를 본인들은 알 것이다. 이제라도 대화를 하자. 대화는 소통의 어머니라 했다. 민원해결은 대화가 약이다. 대화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 수 십, 수 백 명이 제기하는 집단민원도 아닌 1인 민원이 장기화 돼 소리가 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 백, 수 천 명의 민원이라도 이랬을까? 


민원은 대소를 떠나 장기화 하면 지역과 조직은 물론  주민화합에 백해가 온다. 지역민의 바람은 군민 모두가 갑진년 올해는 값지게 사는 값진년을 만들어 값지게 살 것을 바란다. 강자의 횡포나  또는 법대앞에 서게하는 것은 약자에게는 원한(怨恨)의 씨가 된다.  편가름과 보복으로 오해 받지 말고 대화를 하라. 


세계가 공용하는 숫자도  1부터 시작됨을 알자. 1은 소수지만  무시는 말자. 지구상에 비밀은 없다. 잠시 권력의 그늘에 숨어있을 뿐이다. 그래서 천지지지(天知地知아지자지(我知自知)라 한다. 우리 모두는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저주하고,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보복한다는 오해를 받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는 반구제기를 하자. 


사익(私益)이 생긴다면 이런 부탁 안 한다. 저주(咀呪)와 욕설 손가락질, 이간과 모함 뿐임을 안다.  이런 제언은 통일 없는 정전은 결사반대 한다는 송기 먹던 시절의 태안을 잊지 못해서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태안의 소원은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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