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비론과 정치평론  
양비·양시 탈을 쓴 기자들의 '코미디'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1.21 20:52 |

'현장 부재 증명'을 알리바이(Alibi)라고 한다. '범죄 현장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는 뜻이다. 범죄 혐의자가 알리바이가 있다면 범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범죄 혐의자가 복수이고 이들 모두가 '알리바이 없음'을 주장한다고 상정하자. 범죄 혐의자 모두가 범죄자임을 자처한다면, 이것은 범죄자를 가려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도 범인이 아니라는 것'과 같다.

 

이것을 '알리바이의 패러독스'라고 한다. 이 패러독스는 다른 변형태들이 있다. 예컨대 누구의 책임인지 가려내야 하는 상황에서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고 치자. 그것은 곧 '아무도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책임의 패러독스'다. 이와 같은 형태로 곧잘 언론에서 나타나는 것이 '양비(또는 양시)의 패러독스'다.

» 성남미디어 마인황 칼럼니스트   ⓒ수도권타임즈

이것은 언론이 양쪽 다 그르다(옳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어느 쪽도 그르지 않다(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양비론이 글러먹은 것은 언론이 사회감시견으로서 양쪽의 주장을 추적해 '옳고 그름을 가려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방기한다는 데 있다. 닮은꼴로 '양시양비(또는 양비양시)의 패러독스'도 있다. 양쪽 다 반쯤 옳고 반쯤 그르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양비(양시)의 패러독스와 같다. 고로 사실은 '하나마나한' 주장이다. 언론이 양비론, 양시양비론을 구사하는 것은 '일방에 찍히기 싫어서'다. 또는 사회가 부여해준 권력의 4부라는 '언론의 위상을 허투루 알아서'다. '눈치보기' 때문이거나 초월론적(신적인) 시점, 즉 위에서 양쪽을 다 내려다보려는 '시점의 오만함' 때문인 것이다.

 

언론의 정치평론에서 양비론, 양시양비론이 자주 목격된다. 이런 글러먹은 짓을 '정치평론가'임을 걸고 하게 되면 그에게는 '퇴출'이 돌아온다. 더러 어줍지 않은 기자가 정치평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무식하거나(그는 몰라서가 아니라 알려 하지 않아 무식한 것이며 따라서 흔히 무모하다) 제 수준을 오버하는 것이라면 그의 행위는 '코미디'로 여길 수 있다.

 

독자의 실소나 조롱과 같은 반응을 알게 되면 그는 '쪽 팔려서' 그만 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그런다거나 아예 독자의 반응을 차단하면서 양비론, 양비양시론을 구사한다면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또는 '흑막'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양비론, 양비양시론의 탈을 쓰고 일방의 편을 드는 교활함을 끼어 넣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악랄한 짓이다.

 

어떤 수준에서든 양비론, 양비양시론은 '금기'다. 사회가 부여해준 언론의 고유기능은 '공론(public opinion)'의 장이기 때문이다. 공론은 '주장과 토론, 논쟁'을 통해서만 형성된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댓글들이 일부 역기능에도 공론의 역할을 한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이 과정을 외면하고 남의 입을 막고 저 혼자 떠드는 것은 선동 목적이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언론이 사회로부터 권력의 4부라는 사회적 위상을 부여받거나 정치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윤리를 요구받는 것은 언론 자체가 공론장인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공론장이어야 할 정치가 일방적 주장이나 정치선동의 장으로 타락되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상당수 정치인들이 공론정치를, 공론을 통한 정치를 실행은커녕 오히려 모험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민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 그것은 이래서 옳고 또는 이래서 그르다,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고 나오는 정치인은 보기 힘들다. 때문에 언론은 정치의 타락을 문제 삼으면서 공론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시민이 반드시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정치보다 더 공론을 무시한다. 그래서 나타난 사회적 조소가 '찌라시'라는 말이다.

 

이제껏 말한 것을 외부로 삼아야 할 기자, 언론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애써 모른 척한다면 추상적 얘기에서 구체적 얘기로 상승하는 '사례'를 보여주려 한다. 그 과정은 공공연한 토론과 논쟁의 노출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어떤 언론도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공론장의 모나드이며, 그것도 각자 자기 방식을 가진 모나드이기 때문이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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