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지 마라  
죽은 자는……말이 없다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1.08 23:36 |

언론이고 정치고 실망스럽다.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 것을 무슨 의도에선지 기사화하는 언론, 그렇게 기사화된 것에 놀아나서 죽일 듯이 달려드는 정치 말이다. 다시 그것을 일방에 서서 선정적으로 기사화해 증폭시키는 언론 말이다. 참 더럽다!

 

» 성남미디어 마인황 칼럼니스트   ⓒ수도권타임즈

과연 '8·15 해방 이후 최악의 대통령은 누구라고 생각하나?'라는 것이 질문거리인가? 거기에 '놈현, 자살했으니까'라는 응답이 답거리인가? 질문거리가 되고 답거리가 되어야 주제화된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주목받고 기사화의 가치도 주어지며 논쟁거리도 된다.

 

보다시피 질문은 역대 대통령 중 그 누구를 찍어 답해도 거기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질문거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에 뭐라 답한들 그것이 답으로서 가치가 부여되겠는가?

 

대체 '놈현, 자살했으니까'라고 해서 그 답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가령 '승만, 하와이로 도망쳤으니까'와 뭐가 다르겠는가? '박통, 총 맞은 독재자니까'와 뭐가 다르겠는가? '물태우, 물러 터졌으니까'와 대체 뭐가 다르겠는가?

 

이런 답들은 의미론적으로 각자의 생각에 따른 것이다. 뭐라 답하든 가치상의 우열이 있을 수 없다. 거기에서 무슨 가치를 따지겠다는 것인가? 이런 식의 질문과 거기에 따른 답이 주제화될 수 없고, 따라서 논쟁거리도 될 수 없는 이유다.

 

때문에 답의 지시적 의미는 고려의 바깥이 된다. 대신 다만 '놈현', '자살'이란 낱말의 '표현'만 눈에 들어온다. 단지 이런 것에 눈독 들이는 치졸한 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에 당파적 이익의 계산까지 가세하면? 불을 보듯 빤한 사태가 전개된다.

 

'왈가불가'가 그것이다. 왈가불가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것은 '비아냥'이다. 이미 논쟁거리가 아닌 마당에 거기에 제 아무리 무슨 의미있는 것을 말해도 그 수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표현의 시비를 따지기 위해 무엇이든 동원하는 '말싸움'이다.

 

무슨 의미있는 것을 말해도 이미 일방을 편들게 되는 이항대립의 구조 속에 빠져든 것과 완전히 똑같은 사태다. 때문에 '자살한 전 대통령'의 '가치'는 그것을 긍정하는 측에 의해 그것을 부정하는 측과의 '당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으로 현상하고 확대된다.

 

그러나 부정하는 측이라고 해서 그 가치가 열등하다고 매도할 수만은 없다. 자살이라니?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라면 매사에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쁜 일에서 과오를 범한 경우라고 아닌 것이 아니다. 그럴 때에만 '국민의 대통령', '내 마음 속의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비극에 주목하는 것도 인간의 감성세계에선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누군가는 정치를 소거하고 '노무현의 자살'로, 동시대를 산 한 인간의 자살로 간직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다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반노무현을 외치던 세력이 친노세력과 연합도 아닌 합체를 통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말하고, 노무현을 자살로 내모는데 일조한 세력이 역시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질문 같지 않은 질문-답 같지 않은 답'만큼이나 우스운 일이다.

 

'고(故)'는 애도다. 애도는 마치 애도하는 측과 죽은 자 사이에 무슨 일체화나 합의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착각은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에 대해서 영원히 타자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것이 자살이든 뭐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자에 대해서 뭐라 하든. 키에르케고르는 말한다. '죽은 자는 어떠한 현실의 대상도 아니다.'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자에 대해서 영원히 타자인 이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내걸고 '질문 같지 않은 질문-답 같지 않은 답'을 두고 거기에서 가치의 우열을 따진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 우스운 일에 언론의 기사화가 일어났고, 거기에 정치가 놀아났고, 그것을 다시 언론이 선정적으로 확대했다. 참 우습다!

 

살아 있는 자들이 제 생각대로, 제 이익대로 죽은 자를 말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죽은 자를 억압하는 일이다. 그러나 죽은 자는 억압받는 일이 결코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바로 이것이 두려운 일이다. 오히려 이 두려움이 무언가 말을 하게 한다.

 

 '정치하지 마라.'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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