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의 패거리주의  
누가 '이 나'를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3.22 16:29 |

패거리 속에서만 구원을 찾는 자들이 있나니! 바로 이런 자들의 사고나 태도, 행위양식이 패거리주의다. 그렇다면 패거리주의의 행동준칙은 단 하나일 것이다. "타인과 동일하게 행동하라!" 그렇다면 패거리주의의 사상원칙은 이것일 것이다. "모두가 동일하게!"


이런 의미에서 패거리는 '짐승의 무리'다. 모두가 눈사태를 피해 달려가듯 추론이나 비판, 회의 없이 동일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긴 짐승의 무리로 조소받아 마땅한 패거리주의자들이 인간 고유성의 징표인 추론이나 비판, 회의가 어디 있으랴!


추론이나 비판, 회의는 자기의식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자기의식은 커뮤니케이션을 필요로 한다. 자기의식과 또 다른 자기의식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비약을 필요로 한다. 나는 단지 나의 자기의식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비약은 오로지 결과로서만 알 수 있다.


자기의식과 커뮤니케이션과 비약이 시민사회의 고유성이다. 이 고유성을 통과한 것만이 어떤 사회적 일치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패거리주의에선 무조건적인 일치가 목적이다. 때문에 패거리주의에선 자기의식도 커뮤니케이션도 비약도 찾아볼 수 없다.

 

» 통합진보당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공동 대표단(좌에서 우, 통합진보당 홈페이지 사진 캡처).   ⓒ수도권타임즈

패거리주의는 시민사회의 적이다. 통합진보당의 패거리주의를 보라! 후보 등록을 앞두고 21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명의로 발표된 긴급성명이 그것이다. 이들은 왜 긴급성명을 발표했을까?


양당 "야권연대가 정의"란다. 정의인 양당 "야권연대 여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민주통합당의 일부 후보들의 부적절한 언행과 무소속 출마를 막기 위해 양당 지도부가 만나서 처리하자"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의 제안은 패거리주의의 전형이다.


왜 패거리주의인가? '야권연대 여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민주통합당의 일부 후보들의 부적절한 언행과 무소속 출마를 막자'는 것은 그 처리되어야 할 대상자들이 양당 야권연대라는 패거리와의 동일시에 실패한 자들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패거리주의는 사상적이든 현실에서든 논리적 근거가 없다. 원래 자의적이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양당 야권연대 승리의 득이 될 '새누리당의 일부 후보들의 빈번한 부적절한 언행과 빈번한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무소속 출마'에 대해 함구한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영락없이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허수아비 궤변(straw man)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 긴급성명은 오히려 양당 야권연대에 결정적 균열이 가게 한 통합진보당 내부의 일련의 부정적 사태와 거기에 쏟아지는 비판에 대한 호도다.


이정희 공동대표가 시인한 경선여론조사 불법, 심상정 공동대표의 금품선거 의혹, 조성찬 후보의 지역구에서 벌어진 여론조사 오류, 윤원석 양당 단일후보의 성추행 전력, 허술한 후보검증시스템, 당권을 흔드는 주사파에 악화된 당 안팎의 비판이 그것이다.


정치공학, 공작정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살이 떨어져나간 곳을 기술적으로 색칠해 위장하려는 것같다. 니체의 말대로 '화장한 해골'이다. 해골 화장에 공동대표, 후보 등 당을 최악의 위험으로 몰아가는 전초병들의 권력욕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의식, 커뮤니케이션, 비약을 고유한 징표로 하는 '개체의 원리'야말로 근대 이후 사회의 원리다. 헤겔은 그것을 그의 정치철학(《법철학강요》)에서 '개별성의 자기 절대지'라고 불렀다. 베버는 그의 국가사회학(《사회학의 기초개념》)에서 '개인주의'라고 불렀다.


이런 의미에서 가족도, 국민도, 국가도, 그 어떤 집단도 그 자체로는 행위하지 않는다. 자기를 유지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기능하지도 않는다. 하물며 그 역사성이 뚜렷한 정당이나 정당정치 따위야! 그것은 단지 덧셈, 뺄셈만이 가능한 집합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근대사회가 과거의 사회들과 원리적으로 다른 점은 오직 한 가지다. 그것은 헤겔이나 베버처럼 개인이라 말하든 더 나아가 키에르케고르처럼 단독자라 말하든 나는 덧셈이나 뺄셈 또는 집합으로 해소되지 않는 '이 나'를 기초로 한다는 점에 있다.


어떤 정당정치도 근대사회에서는 원리적으로 따라서 제도적으로 무소속 출마를 부인하지 못한다. 무소속 출마자들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든지 주요 정당의 표를 얼마나 깎아먹느냐 마느냐에 상관없이 그것은 정치에서 개인이 살아 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집합을 과대하게 밀고 나가면 패거리가 되고 패거리주의가 된다. 집합을 넘어 패거리를, 패거리주의를 제도화했던 정치시스템이 바로 사회주의 아니던가. 그 사회주의가 붕괴되기까지 사회의 개인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 잠시도 잊어선 안 된다.


예수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말한다. 그 한 마리의 양은 결코 덧셈, 뺄셈의 문제가 아니다. 수량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집합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흔아홉 마리의 집합으로 해소되지 않는 개인, 곧 '이 나'의 문제다.


'이 나'는 집합의 외부다. 특히 패거리, 패거리주의의 외부다. '이 나'는 죽지 않는다. 그것이 예수가 말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나의 삶'이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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