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할 것인가, 고칠 것인가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1.16 11:17 |

언론에 실린 글에 오류가 있다면 고치면 된다. 여기에 어떤 주저함도 있으면 안 된다. 만약 독자나 이해 당사자의 정당한 요구가 있어 오류를 수정해야 한다면 그 수행 방법에는 통상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제1버전을 삭제하고 제2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기존에 쓴 제1버전과 함께 이에 대한 독자나 이해 당사자의 정당한 요구(흔히 반론권이라고 한다)를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두 번째 방법에 제2버전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방법은 공통점이 있다. 글의 오류를 인정하고 그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책임의 강도를 가장 크게 드러내는 것은 세 번째 방법이다.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말로만의 또는 제스처(gesture)적 책임이 아니라 철두철미의 '인식을 통한 책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유와 함께 오류와 수정을 동시에 보여주고 따라서 그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이런 방법들 중 하나를 통해 언론이 글의 오류를 수정하고 책임을 진다고 해도 독자에게나 이해 당사자에게는 꺼림칙한 것이 남는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글 쓰는 일이 항상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언제나 긴장 속에 놓여 있어야 한다.

 

언론은 공론의 장이다. 때문에 언론에 실리는 모든 글은 책임을 필수 요건으로 한다. 책임지지 않는 글은 글이 아니라 공중변소의 낙서나 개인적인 메모 또는 흔해빠진 선동가들의 무책임한 선동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공론의 장에 오르는 글이 결코 그럴 수는 없다.

 

최근 인터넷언론 S일보가 이재명 시장과 관련된 가십기사 하나를 실었다가 뭔가 오류가 있어 기사를 삭제하는 일이 있었다. 그 오류는 이해 당사자의 항의로서 드러났다. 한 마디로 이해 당사자를 도구 삼았던 것이다. 수단은 항상 목적과 함께 간다는 윤리법칙을 몰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S일보가 취한 삭제라는 방법이 통상적인 세 가지 방법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무책임한 것이다. 따라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독자가 댓글을 달았다. "댓글만 있는 이상한 시츄에이션, 내 평생 이런 건 처음 본다."

 

과거에는 언론이 권위가 있었고 따라서 존경도 받았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되는 경우가 흔하다. 남의 오류는 고치라고 하면서 자기의 오류는 고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가 실은 글조차 일언반구도 없이 무조건 삭제하는 지경이라면 언론은 죽은 것이다. 죽은 언론, 끔찍한 일이다. 온라인이라는 형식의 바탕에는 공론의 장이라는 본질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함부로 쓰고 함부로 삭제할 수 없는 이유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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