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2.07 14:09 |

사르트르는 흑심을 품은 어떤 남자 앞에서 '내숭 떠는 여자'의 의식구조를 이렇게 쓰고 있다. "그녀는 자기에게 말을 거는 남자가 자기에게 품고 있는 흑심을 훤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또 그녀는 머지않아 그에 대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긴박한 일이라고 느끼고 싶지 않다."(《존재와 무》)

 

여자는 자신에게 흑심 품은 남자처럼 그 남자에게 정욕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여자는 그 정욕을 그 남자에 응하는 방식으로 표출했다간 자신이 밝히는 여자나 창녀로 취급받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때문에 여자는 '그것이 긴박한 일이라고 느끼고 싶지 않다.' 즉 내숭을 떤다. 이것을 '자기기만(self-deception)의 패러독스'라고 부를 만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악마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자네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곧 나 자신이니까, 자네는 나야."(《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이것은 카라마조프가의 차남 이반이 악마와 만났을 때 악마에게 한 말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물음이 우문인 것처럼 무서운 악마가 있느냐 없느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왜냐하면 악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듯이 악마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악마는 존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존재로서 존재한다. 즉 악마는 활동으로서 존재한다. 실제로 악마가 나오는 이야기나 영화를 보면 악마는 다른 존재를 통해 말하거나 활동한다. 이것을 '악마의 패러독스'라고 부를 만하다.

 

패러독스(paradox)는 모순적으로 또는 부조리하게 보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진실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독특한 진술이다. 인간은 종종 패러독스를 필요로 한다. 왜일까? 이것에 대해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독사(doxa, 세간의 통념)가 견디기 힘든 것일 때 패러독스가 요청된다."(《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패러독스는 견디기 힘든 독사를 깨부수는 지성의 한 양식이다. 지역언론에서 뛰어난 패러독스 하나가 눈에 띈다. 성남N의 이강호 기자가 쓴 것이다. "수정구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주체들이 모두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결과(사실)만 보더라도 여론조사는 유혹의 독이 될 수 있다."(〈수정구 국회의원 예비후보군, 여론조사 두고 설전〉)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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