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의 36인들은 초심으로 돌아가라  
오만과 권위주의 버리고 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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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타임즈 | 2016.01.16 18:28 |
2008-09-02 09:46:00 기사입력 | 류수남 ysn7675@hanmail.net     

성남시정과 관계를 맺고 있는 36명 선출직들의 4년 임기 가운데 2년이 지났다. 마라톤에 비유하면 반환점을 돌아 출발지점을 향해 달려오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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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지점 이었던 7월 초만 해도 이대엽 시장은 많은 얼론 매체를 통해 시민이 주인이 되는 시정을 하겠다며 남은 2년 동안에 펼칠 장밋빛 공약을 쏟아냈다. 이런 약속은 의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민의를 받들고 섬기는 어진의회와 희망과 열정을 담은 으뜸의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친환경과 경제를 일구는 의회와 첨단도시를 구현하는 보탬의회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또 있다. 더불어 함께 누리고 보듬는 나눔 의회를 만든다고 했다. 
 
두 집단의 이런 약속들은 기대가되는 약속들이라 할 수 있다. 의회는 전반기의정에 무한책임을 지겠다던 한나라당은 후반기에 접어들어 박권종 의원이 대표가 됐다. 
 
그는 대표 수락연설에서 반목과 갈등을 넘어 하나가 되는 의회 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반목과 갈등을 스스로 느낀 모양이다. 그리고 지관근 민주당 대표도 대표수락연설에서 성남사랑과 발전에는 무한책임을(?)비리와 부정 그리고 원칙 없는 행정과 예산낭비는 무한 견제를 다하는 권능(權能)있는 의회의 기본을 살려 나가겠다고했다. 
 
이 또한 기대가되는 약속들이다. 이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런 장밋빛 약속들은 과연 지켜질까? 
 
지금 두 집단 36명의 선출직들은 공전의 계절로는 기승을 부렸던 한 여름의 끝자락에 와있다. 그리고 절기상으로는 뿌린 씨를 거두는 가을의 문턱인 처서를 맞고 있다. 
 
반면 이들만의 계절로는 후반기라는 계절을 맞고 있다. 그리고 절기에 비유하면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소만(小滿)쯤 에 비유하고 싶다. 
 
공자(孔子)의 삼계도운(三計圖云)에는 일년지계(一年之計)는 재어춘(在於春)이요. 일일지계(一日之計)는 재어인(在於寅.晨)이라.(한해의 계획은 봄에 세우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세우나니) 춘약불경(春若不耕)은 추무소망(秋無所望)이라했다.(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秋收)것이 없다는 뜻이다) 두 집단 37명은 백번 곱씹어볼 명언이다. 
 
앞으로 남은 2년의 수확을 위해서는 문전옥답(門前沃畓)에는 무슨 벼를 심고 재 넘어 사래긴 밭에는 무슨 씨앗을 뿌려야 할지, 또 마당 앞 텃밭에는 무엇을 심고 가꿔야할지의 계획을 잘 세워야한다. 
 
바로 지금이 그 시기다. 그래야 논밭을 묵히지 않아 가을에 추수를 많이 할 수 있다. 몽니나 부리고 감투욕심에 사로잡혀 줄서기나 하고,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공무원들에게 고함이나 지르는데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또 동정을 간섭하며 의장단과 기 싸움이나하고 또 바뿐 공무원을 오라 가라 하는 비생산적이고 소모적 의정은 2년 후의 의정수확(收穫)은 흉년(凶年)이 들거나 쭉정이 뿐일 것이다. 
 
뿐만 아니다. 그럴듯하게 당론이 어떻고 양당대표의 협의사항이 어떻고 하며 목청을 높이는 것도 안된다. 이렇듯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는 이기적 의정은 지역이 야위는 혈세낭비의 의정이 된다. 
 
지금 일부 의원들은 몽니를 부리고 있다. 또 폭력과 소송과 유용 등 별별 추태를 다 보이고 있다. 또 초심을 잃어 언행일치가 안 되는 의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의원으로서의 품위나 조직의 신뢰는 떨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조직의 앞날은 암담하기만 하다. 이런 암담의 굴을 벗어나 희망 있는 의정을 하려면 먼저 목에 힘을 빼고 자세를 낮추는 자기개혁을 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후보시절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많은 의원들의 언행을 보노라면 가관들이다. 이는 초심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초심(初心)은 무슨 일을 처음 시작할 때 품는 마음으로 그에 대한 사랑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배우는 겸손과 순수한 동심도 있다. 그래서 초심이 중요한 것이다. 피카소는 이런 동심을 가꾸는데 무려 4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런 초심이 상실되면 자기생활에 필요한 열심(熱心)과 뒷심이 없어진다. 
 
그래서 의정활동을 하는데 스스로 장애(障碍)의정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다. 안하무인의 교만과 오기와 권위주의가 판을 치는 제왕적인 언행들을 하게 된다. 
 
36명 중에는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는 선출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심을 잃은 다중(多衆)에 가려져 그 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전도가 암담하고 불행한 징조들이다. 초심은 전등불이 아닌 촛불과 같아 돌아보고 가꾸지 않으면 미풍(微風)에도 꺼짐을 알아야한다. 초심(初心)! 초심! 초심(初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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