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폰 무티우스는 1949년 하이델베르크에서 출생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과 마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을 수학했다. 유럽 사상사와 과학사를 중심으로 철학, 정치학 분야에서 강의활동을 하고 있다.
<베르크벡 포럼 - 미래에 대한 생각> 협회장을 맡고 있고, 시민단체 <청소년의 파트너>(URI)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상위의 500대 예비연구』, 『자본』, 공동 저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발전, 미래경영을 위한 개념들』, 『혁신의 예술』 등이 있다.
우리는 미래를 여전히 <과거의 시선>으로 확고부동한 입장과 범주에서 명확히 구분해서 바라본다. 가상화의 글로벌화, 정보사회와 지식사회, 디지털 혁명과 생명공학혁명, 이 시대가 자기 자신을 기술하는 데 사용되는 이 새로운 개념들의 이면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가? 무엇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가? 우리는 시대가 변하는 것을 보고 있는 증인들인가? 배른하르트 폰 무티우스의 화두는 바로 이것이다.
변혁의 시대에는 당연히 누구도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고 미리 예측할 수 없고, 다만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특히 이토록 여러 가지의 완전히 서로 다른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변화들이 현재의 역사적 단계에서처럼 한꺼번에 일어난다면 말이다.
변화의 템포는 빠르다. 바퀴시대에서 통신시대로 변했다. 원료에서 정보로, 노동에서 지식사회로 변화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미디어와 정보기술로 발달했다. 제품가치에서 관계가치 시대로 왔다. 국민경제에서 다국적 경제로 가고 있다. 현실의 인간에서 가능성의 인간으로 관점이 변했다. 특히 미디어 산업은 무게가 없는 경제의 중공업으로 변한다.
그런데 우리의 인식력과 상상력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조건에 전혀 부응하지 못한다. 우리는 미래를 과거의 시선으로 본다. 정보와 지식이 미래의 원료와 자원이라면 창의력은 이러한 재료와 자원을 더 많은 가치가 생기도록 변화시키는 지적 능력이다.
앞으로 여러 학문들은 객관적 진리를 규명하려는 혹은 규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포기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관찰자에 의존하고 상호관계에 의존하는 적합성과 연결능력을 추구한다. 학문적 인식은 현실의 모사라기보다는 여러 가능한 현실들의 구축으로 더 많이 이해된다.
네트워크 시대는 어쩌면 계몽주의를 변증법적으로 명예 회복시켜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균형의 비전은 오늘날 융통성 없는 균형모델을 더 이상 모범으로 삼을 수 없다.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옛날의 기계적인 천칭의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 조절하는 생물학적 시스템과 같은 매우 추상적으로 나타나는 복잡한 운동형식이다. 우리는 자연이 가령 혈액응고에서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유동적인 균형을 마음속에 그려보도록 해야만 한다. 미세하게 조절되는 상호작용의 시스템에서 혈액응고와 응혈해제라는 반대방향의 과정들은 특별히 균형이 이루어진다. 각 방면에서 유발시키거나 가속화시키고, 동시에 방지하거나 과정을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하는데, 이 요인들은 과도한 반작용을 저지하고, 시스템이 통제 불능에 빠지는 것을 예방한다. /TSmoney.com * 더 자세한 내용은 tsmoney.com(논술방)을 참고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