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스 젠킨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re-thinking history)』  
역사란 ‘진실’을 가장한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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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타임즈 | 2012.01.14 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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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에서 키스 젠킨스는 한국 역사학계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당돌한 감을 줄지 모른다. 그는 먼저 역사와 과거를 구분하라고 지적한다. 이 양자를 명확히 구분할 때에야 비로소 과거를 다루는 담론으로서의 역사의 본질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담론이란 역사가에 의해 만들어진 언어적 구성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언어적 구성은 역사가의 인식론, 방법론,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따라 각각 달라진다. 따라서 역사란 항상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다.

 

게다가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각각의 입장은 항상 일정한 사회구성 내의 권력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다시말해, 역사란 항상 누군가를 향해 웃음 짓도록 조율되어 있는 담론이다. 따라서 그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이제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젠킨스의 두 번째 매력은 역사의 본질과 관련해서 자주 제기되는 기본 문제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한층 더 배어난다. 우리는 과거의 진실을 실제로 알 수 없다. 객관적 사실이라면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위하지 않는 역사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편견에서 완전히 초월한 객관적 입장이란 있을 수 없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과의 감정이입이란 절대 불가능하며, 결국 모든 역사는 과거 사람들의 마음의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역사가의 마음의 역사이다. 과거는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며 증거란 항상 역사가의 담론의 산물이다. 역사적 개념쌍은 문제투성이다. 언뜻 보면 이러한 저자의 견해는 지나칠 정도로 회의적이며 냉소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반성을 통한 적극적인 회의주의’를 주창한다. 즉 이를 통해 역사가 얼마나 과거와 상관없이 외부적인 강요와 압력에 의해서 쓰여 져 왔는지를 검토할 것을 강조한다.

 

젠킨스의 세 번째 매력은 포스트모던으로 규정되는 오늘날의 역사연구가 아니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중에 한껏 터져 나온다.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간단히 ‘중심들의 죽음’과 ‘메타 이야기들에 대한 불신’으로 규정한다. 이 때문에 오늘날 문화 전반에 걸쳐 회의주의가 팽배하고 한숨 섞인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여오게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이러한 포스트모던한 분위기를 통해 역사 자체를 상대화시키고 역사화하는 계기가 마련된다고 확신한다. 위기가 기회로 전환될 가능성의 포착이다.

 

결국 이 위기로 인해 견고해 보이던 과거는 무참하게 깨어진다. 그리하여 그 벌어진 틈새를 비집고 수많은 장르의 새로운 역사들이 탄생한다. 곧 포스트모던 시대에 새로운 민주적 해방 공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초래한 결과를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과 함께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추어 나가는 방식을 제시한다.

 

이 책은 비판적으로 읽는 방법을 가려준다. 역설적인 표현문장이 많다. 질문을 던지며 사고력을 키우는 것을 염두 한다.

 

이 책은 철학과 문학이론에 관련된 영역까지도 함께 기술했다. 왜냐하면 역사연구라는 것이 과거와 현재를 읽고 이해하는 방식과 관계되어 있다고 할 경우, 이때 주로 읽기와 의미 형성에 관심을 가지는 담론들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인 것이다. 과거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특징은 문학의 비평과 대비시키며 설명한다. 역사가나 학자들의 견해를 실어가며 자신의 관념을 설득한 점이 독특하다.

 

역사란 과거에 관한 하나의 담론이다. 범주상 과거와는 다르다는 문제를 살펴보자.

 

인식론, 방법론, 이데울로기에 의해 역사는 재편성된다. 여기에 권력이 더해진다.

 

역사는 결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항상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다. 과거의 사실은 실제로 아무것도 정당화시켜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여기서 핵심은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방식이다.

 

역사가는 일정한 정체성을 지닌다.

 

첫째, 역사가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가치와 입장,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취한다.

 

둘째, 역사가는 인식론적 전제를 취한다. 폭넓은 가정이 개입된다는 점이다.

 

셋째, 관례의 절차를 따른다. 즉, 자료의 기원, 진위여부, 신빙성 따위를 검토한다. 그렇지만 누락되는 점이 많다는 것이다.

 

넷째, 자료를 뒤져 과거의 흔적을 새로운 범주로 재생산해 낸다. 과거를 역사로 탈바꿈시키는 이 행위가 곧 역사의 기본 작업이다.

 

다섯째, 다시 인식론, 방법론, 이데올로기적 요인에 개입돼 조사를 토대로 결과를 저술한다.

 

여섯째, 텍스트 소비. ‘한 개인의 반복된 ‘읽기’가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 말은 작가들이 그들의 의도나 해석을 결코 독자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동시에 독자들 또한 작가가 의도하는 것을 완전히 파악해 낼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동일한 텍스트가 이런 저런 광범한 담론 안에 삽입될 수도 있다. 결국 거기에는 논리적 한계가 있고 각각의 읽기는 곧 또 하나의 ‘쓰기’가 된다. 이것이 바로 해체주의자의 텍스트 세계이다. 거기에서는 한 텍스트가 다른 정황들 속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여기가 곧 ‘차이의 세계’이다.

 

“역사의 정의”를 말한다면 역사는 유동적이며 문제투성이인 담론이다. 겉보기에 이는 세계의 한 단면인 과거에 관한 담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에 얽매어 있는(대체적으로 월급을 받는)연구자 집단이 만들어 낸다.

 

이 연구자들은 인식론, 방법론, 이데올로기와 실천적 측면에서 일정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이 연구자들이 만들어 낸 생산품은 일단 유통되면 논리적으로 무한히 이용되고 남용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것은 주어진 일련의 권력 토대에 부합되고 지배 주변의 스펙트럼을 따라 역사들의 의미를 구조 지워 유포시킨다. 나는 역사의 틈새를 쓴다. /TSMone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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