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자들, 더러운 새끼들  
나는 정치와 언론을 어떻게 보는가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3.01 22:24 |

비난을 일삼는 자들이 있다. 가령 새누더기당이 어떻고, 민주통곡당이 어떻고, 민주통정당이 어떻고, 좌빨이 어떻고, 멍멍이가 어떻고, 줄줄이 알사탕이고, 양아치 그 놈이 어떻다는 식이다. 인터넷 게시판, 심지어 새로운 매체로 부상한 SNS까지 비난이 난무한다.

 

양식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이 비난이라는 것은 쉽게 간파된다. 비난이 비난인 것은 비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근거도 확신도 없는 의견이다. 그러므로 비난은 애당초 비난을 쏟아낸 자에게도 전혀 자신을 대표하지 않는다.

 

» 성남미디어 마인황 칼럼니스트   ⓒ수도권타임즈

근거나 확신의 투쟁이 시작되면 도망치는 자들이 비난자들이다. 침묵으로 위장하는 자들이 비난자들이다. 전자든 후자든 비겁한 것이다. 이처럼 비난자들이 비겁한 것은 언제나 타자와의 교환이 아닌 자기와의 교환, 즉 마스터베이션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비난자들 중에는 자신의 마스터베이션이 자신을 돋보이게 한다고 착각하는 자들도 있다. 타자가 자신이 퍼부은 비난에 귀 기울여줄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즉 비난은 어떤 반응이 있을지 관찰하려는 호기심에서 나온다. 더러 반응하는 멍청이들도 있긴 하다.

 

볼 것도 없이 착각이다. 역으로 비난자가 비난 대상에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 폭로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비난의 역설'이다. 자신의 거짓말을 타자가 믿어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정작 거짓말하는 자신이 거짓말쟁이임을 잊고 마는 '거짓말쟁이 역설'과 같다.

 

때문에 실제가 아닌 비난에 직면해 머리를 굴리는 자는 비난에 대응하지 않는다. 더 머리를 굴리는 자는 비난자들이 더 비난하도록 유도하기까지 한다. 그들을 더 화나게 만들어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것이다. 그는 배꼽을 잡는다. (머저리 같은 녀석!)

 

그러나 이런 식으로만 비난에 대처할 수 없다. 아니 비난을 방치할 수 없다. 인터넷 게시판, 새로운 매체로 부상한 SNS에서 드러나는 쌍방향성, 개인성, 불특정다수의 참여와 같은 새로운 조건들은 오히려 책임의 조건들, 책임 있는 발언의 조건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 게시판, SNS가 비난의 무대가 되는 것은 이상한 일, 아니 놀라운 일이다.  왜 놀라운 일인가? 역사상 유례없는 책임 있는 발언의 조건들이 갖추어졌는데도 오히려 책임 있는 발언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엔 심각한 인간의 문제가 놓여 있다.

 

어떤 인간의 문제인가? 자기 생각이 없는 인간의 문제다. 자기의 생각을 근거와 확신에 입각해 발언하는 책임 있는 인간의 부재라는 심각한 문제다. 또는 자기 생각의 부재를 고작 타인의 반응을 관찰하려는 호기심으로 대체하는 인간이라는 심각한 문제다.

 

이것이 리스먼이 《고독한 군중》에서 말했던 문제일 것이다. 그는 사회를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타인지향형으로 구분하고 아메리카가 사회적으로 타인지향형의 군중사회로 바뀌었다고 개탄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미 1950년대에 말한 것이다.

 

여기서 타인이란 나는 물론 신도 알 수 없고, 어찌할 수도 없는 그런 본래적 의미의 타자가 아니다. 아메리카인들이 지향하는 타인이란 자기도 아니다. 타자도 아니다. 그것은 각자가 서로를 의식해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이러한 타인지향형 인간의 문제는 곧 고독한 군중의 문제다. 아메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메리카적 생활양식은 세계화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타인지향형의 군중 또는 이보다 앞서 1920년대에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한 대중으로 대체된 것은 인류의 비극이다.

 

이 점에 주목하지 않은 어떠한 사회변화의 노력도 위선이다. 진보를 주창하는 자들이 겉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군중, 대중 따위에 기대어 진보를 주창하는 자들이야말로 인류의 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 시대 최고의 반동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타인지향형의 대중현상에 저항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일 수는 있다. 줄일 수 있다는 이 관점에서만 줄일 수 있다. 그래야만 사회의 안정, 변화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만큼 결정적으로 줄일 수 있다.

 

정치에서 그것은 모바일경선, 여론조사와 같은 타인지향적 모델을 분쇄하는 것이다. 그것은 빼어난 소수가 정치를 하게 하되 그들의 권력이 고정화되지 않도록 하는 정치모델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대의제+제비뽑기'다. 공천혁명? 야권연대? 엿이나 먹어라!

 

언론에서 그것은 인터넷 게시판을 비난으로 도배하게끔 유도하는 비판들, 즉 비판을 가장한 교활한 비난들과 싸우는 것이다. 동시에 근거와 확신에 근거한 비판을 수행하되 그것에 대한 독자의 비판에 사고의 문을 여는 것이다.

 

성남지역 인터넷언론을 두고 말할 수 있다. 게시판이 없는 지역언론은 당장 퇴출되어야 한다. 그것들은 언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볼 것도 없이 관의 보도자료에 기대면서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듣는 마스터베이션에 몸 달아 있기 때문이다.

 

게시판이 비난으로 도배되는 인터넷언론은 젖은 손으로 되돌아보라. 찍어서 말할 수 있다. 성남투데이와 성남일보다. 생산되는 기사가 비판인지 비난인지 돌이켜보라. 언론은 도구가 아니다. 비판을 가장한 교활한 비난의 도구는 더욱 아니다.

 

비난자들? 더러운 새끼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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