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튀는 거야!  
권력의 고정화를 막아야 한다.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3.20 07:47 |

1. 경기도의회 의장 허재안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도의원직 사퇴를 고심하고 또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뭔 이유에서인지 주저앉은 일이 있다.


2. 성남시의회 시의원 지수식은 도의원이 되기 위해 시의원직을 사퇴하고 공천까지 받고 도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선거구는 5선거구. 새누리당은 시의원 빼내서 도의원 하라고 공천을 준 셈이다.


3. 그런데 도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5선거구는 도의원 장정은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도의원직을 사퇴한 곳이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소속당인 새누리당 국회의원 공천을 받지 못했다.


4. 분당갑은 국회의원 고흥길이 당정간 가교역을 하는 특임장관으로 입각하는 바람에 사실상 지역구 국회의원이 공석인 지역이다.


5. 분당을은 국회의원 임태희가 고용부장관으로 입각하는 바람에 오래 전부터 지역구 국회의원이 공석인 지역이다. 이어 그는 국가권력의 심장인 청와대 대통령실장으로 들어가 관례에 따라 의원직을 사퇴했다. 임태희는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 이번 총선에 출마할 의사를 나타냈었다. 장관까지 했으니 다시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다면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6. 임태희의 국회의원 사퇴는 결국 국회의원 보궐선거로 이어졌다. 그 빈 자리 채우자고 민주당 대표 손학규가 나와 '정권심판' 운운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7. 민주통합당은 처음엔 내 지역구 못 내주겠다고 시의원들 지지성명까지 받아가며 버티다가 결국 손학규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된 국회의원 지망생 김병욱에게 이번 총선에서 단수공천을 주었다.


8. 새누리당이 박근혜당으로 바뀌자 분당갑, 분당을은 전략공천지역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전략공천? 고흥길, 임태희라는 3선 의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새누리당이 처음부터 다시 도전해야 하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덕분에 열심히 찍어준 분당의 유권자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다.

 

» 성남미디어 마인황 칼럼니스트   ⓒ수도권타임즈

성남지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런 단편적인 사실들을 모아보니 대략 이런 의문들이 생긴다.


시의원 하고 싶다고 해서 시의원으로 뽑아주었더니 도의원 하고 싶다고 제 멋대로 튄다? 도의원 하고 싶다고 해서 도의원으로 뽑아주었더니 국회의원 하고 싶다고 제 멋대로 튄다? 국회의원 하고 싶다고 해서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었더니 대통령이 장관, 대통령실장 시켜준다니까 제 멋대로 튄다?


왜 자꾸 제 멋대로 튀는 거야! 누구 맘대로! 이 때문에 자꾸 보궐선거 치르고, 막대한 혈세 낭비하고, 후보자 눈불 켜고 다시 찾고, 바꾸니 못 바꾸니 정쟁해야 하고, 이 얼마나 큰 사회적 낭비인가!


모아본 단편적인 사실들을 관통하는 일반화된 의미 하나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보다 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표자(또는 대표하려는 자) 또는 정당정치가 움직인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은 국가라는 틀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


우선 이런 일들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볼 수 있다. 가령 노무현정권 시절 국회의원 유시민이 복지부장관으로 입각한 사실도 있다. 이 밖에도 많은 사례들이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공직선거법 국회법과 같은 법의 결함, 즉 입법과제를 제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의원이든 도의원이든 국회의원이든 뽑아주었으면 끝가지 제 소임을 다하라는 취지를 이루기 위해서다. 여기엔 지방자치와 국가운영의 분리, 삼권분립과 같은 원칙이 고려될 것이다.


이것은,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지적들이 있어 왔다. 실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문제일 것이다. 한 가지 보탠다면 이 입법상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서 각급 의회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다수 대표자의 공개토론에 의한 합의와 다수결이라는 의회의 원리와 대표자의 직접적 결정에 의한 집행부의 원리는 다르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것은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남시장 이재명은 이 두 가지 원리에 대한 구분을 못해 한두 번 패가망신을 당한 게 아니라는 사실, 많은 시민들이 알고 있다.


문제는 의회, 집행부의 서로 다른 원리를 안다 해도 근본적으로 이런 튀는 현상, 즉 국가라는 틀 안에서 보다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대표자나 정당정치가 움직이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가 발생 이래 국가는 이런 보다 많은 권력을 행사하려는 자들을 전제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의 정점에 왕이 있었고 황제가 있었고 지금은 대통령이 있고 또는 수상이 있다.


실제로 어떤 정치체제냐를 떠나 지금도 대개의 사람들은 최고 권력자에 대한 공포와 반대로 어떤 기대나 신뢰를 가지고 있다.


물론 국가가 공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장치라는 점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국가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장치가 반드시 국가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요컨대 사회가 국가를 대신하면 되는 것이다.


또 공적인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즉 베풀기 위해서는 빼앗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금으로 빼앗아온 것을 재분배하는 것인데도 그것을 국가가 국민에게 베푸는 증여, 즉 '복지'라고 하니 실은 웃기는 얘기다.


국가를 정부와 동일시하는 사회계약론자나 복지국가 운운하며 국가권력을 수단삼아온 사회민주주의자는 오히려 예외없이 국가의 수단으로 전락되었다. 현대국가의 역사가 증명해준 것이다. 그들은 국가를 통해 뭘 해보려는 '국가계급'이다.


현재로서는 공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기구로서 국가를 배제할 수 없다 해도 국가문제의 핵심에는 권력을 지향하는 국가계급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통합진보당 윤원석의 사례에서 보듯 국가를 감시해야 할 언론사 대표마저 국가계급의 일원이 되겠다고 튀는 판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 총선을 겨냥한 공천을 보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국민경선과 같은 대중민주주의 방법을 동원해 유권자를 국가계급 재창출에 이용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대중민주주의? 과대민주주의에 불과하다. 국민경선에 이용된 모바일투표는 주권행사의 최소장치인 비밀(밀실)투표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다.


참정권의 확대? 참정권은 주권을 가진 자가 오히려 제 손으로 국가계급을 창출해 제 주권을 양도하는 권리다. 더욱이 선거가 끝나고 나면 연극이 끝난 텅 빈 무대처럼 삶은 의연 현실의 지배관계에 놓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는 착각을 준다. 대표자가 되려는 후보가 머슴 운운하며 유권자들 앞에 머리를 숙이므로 잠시 내가 대표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착각! 과대민주주의에 불과한 국민경선에 참여했다는 기만적인 자기위로!


대의제 이전의 국가계급은 군대, 관료집단만으로 통치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불가능하다. '그게 너희 것이냐?'는 정당성이 문제되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동의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성 확보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선거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한다 해서 국가가 군대, 관료집단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 없이는 국가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거는 통치의 정당성 확보절차라기보다는 오히려 국가계급 창출의 장치 아닌가. 다수 동의의 단순한 절차가 아닌가.


선거를 통해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의 분리가 제도적으로 창출되기 때문이다. 비밀투표는 밀실에서 각자를 주권자로 만듦과 동시에 스스로 주권자임을 부정하는 장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매수당한 자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매수한 자를 투표할 수 있다. 제 생각보다는 사전에 입력된 국가계급, 언론매체의 견해로 투표할 수 있다. 사표방지 심리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척도삼아 투표할 수 있다.


그러니 비밀투표가 완벽한 주권행사가 될 리 없다. 계급투표가 될 리도 없다. 이 분리를 다시 일치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선거를 치루는 것이다. '바꿔!', '못 바꿔!'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리의 반복에 지나지 않다.


결국 투표로는 국가에 의존하는 정치시스템을 바꿀 수가 없다. 국가라는 틀로 수렴되는 보다 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당이나 대표자들이 움직이는 현상을 막아낼 수 없다. 국가계급이나 국가계급을 지향하는 권력욕을 가진 자들을 제어할 수 없다.


권력욕을 가진 자들, 국가계급을 제어할 장치가 필요하다. 정치개혁의 요체는 여기에 있다. 그것이 공직자에 대한 '탄핵'과 '제비뽑기'다. 이것만이 권력의 고정화를 막고 선거라는 환상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다 사회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정치개혁은 요원하다. 김부선 스캔들에 휩싸인 시장 하나 책임을 묻지 못하는 정치, 선거 때마다 '바꿔!'와 '못 바꿔!'를 반복하는 정치일 뿐이다. 선거가 축제라고? 아니다. 너무 따분한 일이다. 졸립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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