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이삼경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2.20 17:54 |

얼마 전 이삼경이 쓴 글 '줄줄이 알사탕 같은 후보들'에 대해 몇 마디 했다. 대략 냉소주의에 찌든 그의 캐릭터, 그것이 비롯되는 그의 독아론적 사유태도, 안전한 장소에만 서는, 따라서 무엇을 말해도 무의미한 비판 등에 걸쳐 있다. 본질비판으로 수행한 것이다.

 

이런 비판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했어야 했다. 공자도 '잘못하거든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라(過則勿憚改)'고 말하지 않았는가. 물론 반응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반응의 방식도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그러나 여전히 반응하지 않는다. 반응할 가치(?)가 없다는 듯하다.

 

그것을 짐작케 하는 것이 있다. 시장 이재명에 대해 "업적 낼 생각 말고 빈둥빈둥 놀라"는 충고가 그것이다. "특별히 남긴 게 없는 시장이 되고 싶다"는 서울시장 박원순의 말에 '필' 받아서 말한 것이다. 이런 조루증도 보기 힘들다. 즉자적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투'?

 

어떤 가치체계가 수립되면 흔히 사람들은 그 기초구조랄까 그런 것을 묻는 경향이 있다. 예수의 출현 이전 유대교에는 613개의 계율이 있었는데 유대교도 사이에선 그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계율인지 또는 계율의 근본은 무엇인지가 논쟁거리였다고 한다.

 

누군가가 히렐이라는 랍비에게 그것을 물었다. 히렐이 답했다. "네가 싫어하는 일을 이웃에게 하지 말라. 다른 것은 모두 이것의 해석에 불과하다." 기원 후 2세기 초 유대교도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아키바라는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랍비 히렐과 아키바가 말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완전히 같은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히렐이나 아키바가 말한 것이 상식화되어 있었다. 그런 세계에서 어떤 랍비가 예수에게 같은 것을 물었다. 예수는 무엇이라 답했을까?

 

"그런 것쯤은 당신이 잘 알고 있지 않소? 내게 질문할 것이 뭐가 있겠소. 그러니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면 어떻겠습니까?" 분명해졌다. 예수는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유대교가 안전하게 서 있는 그 기초구조를 비판해버린 것이다. 예수의 패러독스다.

 

이삼경의 글을 사례로 말하면 예수는 업적을 내기 위해 불철주야 뛰는 시장을 말하건 반대로 빈둥빈둥 놀면서 함께 가는 시장을 말하건 양쪽 다 조롱한다. 그렇다고 예수가 특별해서? 아니다. 양식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이 정도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삼경은 글장난 중이다. 왜 글을 쓰는지 알 수가 없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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