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의 입 김미희  
첫 경험이 발견되지 않는 가면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5.31 08:43 |

처음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첫 키스. 신혼 첫날 밤. 처음 아이를 얻었을 때. 얼마나 가슴 두근거렸던가. 그와 함께 정신은 얼마나 생기있게 움직였던가. 이런 '첫 경험'들이 한 사람의 사랑의 역사를 이끌어간다. 다른 유형의 첫 경험들을 고려할 때 무릇 모든 역사에는 첫 경험들이 굳건히 자리잡고 그 역사를 이끌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의 근대적 사유에는 사유를 죽음과 연계시켜온 전통을 깨고 그것을 삶의 쾌락, 탄생, 불투명성, 비약으로 이해한 흔치 않은 사유들이 있어 왔다. 가령 국가 고찰에 획기적인 관점을 제기한 홉스, 혁명을 다시 사유한 아렌트, 생산(글쓰기)과 소비(글읽기)로 분리되는 정신의 유통과정을 꿰뚫은 발레리 같은 이들이다.

 

  ⓒ수도권타임즈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이런 희유한 사유들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찬찬히 음미하면서 삶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게 된 것도 실은 인생의 첫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운동한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정확하게는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정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미지의 첫 경험과 함께 언제나 살아 숨 쉬는 정신이다. 이에 대립되는 다른 정신은 일상적인 경험은 물론 첫 경험조차 생각도 해보기 전에 이미 남으로부터 듣고 익힌 것으로 재단해버리는 죽은 정신, 언제나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정신이다. 후자의 소유자는 어떤 논리나 레토릭을 구사하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 무슨 신비주의적인 타심통(他心通)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논리로 나타나든 레토릭으로 나타나든 기계적인 정신의 소유자는 기계적인 정신 그 자체로부터 초래된 '삶의 패러독스'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이해할 수 없는 그는 자기의 삶도 살지 못한다는 패러독스 말이다.

 

삶의 패러독스로 역으로 그는 자기 삶을 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그의 논리나 레토릭은 자기 삶과 결부되지 않은 논리뿐인 논리, 레토릭뿐인 레토릭에 불과하다. 그는 겉돌 수밖에 없다. 참 많이 보아왔고 지금도 보고 있다. 게다가 이 패러독스는 삶 자체에서 비롯된 근원적인 이치여서 삶과 직결된 모든 분야, 경우들에 관통되고 관찰된다.

 

최근 김미희가 연일 쏟아내는 말들을 보고 있다. 주사파가 요구하고 주사파에 필요한 인간이라는 판단이다. 그 말들은 예외없이 기계적인 정신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말들이 자기라는 정신의 산물이라 신앙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이미 남으로부터 듣고 익힌 것을 자기화한 것에 불과하다. 김미희는 그저 '주사파의 입'일 뿐이다.

 

그런 김미희에게선 첫 경험이 발견되지 않는다. 첫 경험이 발견되지 않으니 그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정신이 있을 리 만무하다. 첫 경험? 성남이란 동네정치무대에서 중앙정치무대에 오른 그녀를 온 국민이 직시하고 있다는 그것! 조만간 김미희라는 가면이 남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미 가면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한 마디 남겨둔다.

 

'첫 경험을 주의하지.'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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