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성은(聖恩)과 졸업식노래  
이대엽 시장 인사 ... 특정인 대상 인사 '논란'?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6.01.16 18:57 |
2010-02-24 09:10:00 기사입력 | 류수남 ysn7675@hanmail.net     

[류수남 칼럼] 대신(大臣)들은 들으시오. 과인(寡人)은 오늘 우의정에 김갑동과 좌의정에 김을동을...발표가 끝나기도 전에 전하(殿下)성은이 망극 하옵니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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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사극에서 흔히 듣는 대사로 조선시대의 임금과 신하들이 함께하는 어전(御前)의 모습이다. 각설하고, 성남시 2,500여 대신(?)들이 3월의 성은(聖恩)에 망극을 연발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3월초로 예상됐던 51년생들의 명퇴에 따른 후속인사가 안개낀 9부 능선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이는 2월 임시국회를 바라봤던 3개시 통합이 여의치 않으면서 이에 따른 논공행상(論功行賞)의 인사에 방지 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또 일부 명퇴자가 이를 거부하면서 숨고르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다소 늦어지거나 나눠서 할 수도 있다. 이번 인사는 이대엽 시장이 6.2선거를 목전에 둔 4대 시장으로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숨고르기는 어느 때 보다도 장고가 될 수 도 있다. 
 
이번 인사에서 시청사 건립과 통합시 추진에 앞장섰던 공무원들과 기술직 배려라는 설이 청 내에 나돌면서 내부의 불만들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특히 서기관진급을 바라보는 5급들은 통합시 행정을 특정인 혼자 했느냐며 이 부분에 대한 불만들은 극에 달하고 있다. 만약 소문대로 논공행상의 인사가 이뤄질 경우 이는 특정인을 봐주기 위한 핑계 인사로 단정하는 분위기다. 
 
여론의 중심에 있는 이들의 인사가 소문대로 단행될 경우 4대의 종착역에 와 있는 이대엽 시장의 인사 평가는 특정인을 의식한 인사로 부정적인 분위기다. 두고 볼 대목이다. 
 
또 5급을 바라보는 6급들의 불만 또한 만만치 않다. 4급 승진과는 달리 논공행상과는 무관한 5급 승진에도 특정인들이 거명되면서 6급들의 불만도 노골적이다. 이런 불만과 불안 속에서도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여성공직자들은 여성 몫을 챙기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51년생의 명퇴로 생기는 3자리에 통합의 알파까지 4석이 생길 겨우 여성공무원들은 주장할만하다. 또 이런 알파가 아니라도 여성 몫은 주장할 수 있다. 여성들은 양성분배라는 반반의 주장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남성들은 흑백의 양성보다는 숫자비율을 주장할 수 가 있다. 그래서 여성공무원들의 불안한 마음은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직렬안배를 주장하는 기술직들과 그동안 9층을 바라보고 기다렸던 공직자들을 무시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인사권자의 고민은 깊을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5급 이하의 하위직들은 4급 진급에 누구든 관계없다. 다만 통합시(?)로 인해 늘어날 2~3개를 포함해 7~8석의 과, 계장자리에 탐을 낸다. 
 
선거냐. 논공이냐. 원칙이냐. 이런 세 갈래 길에선 이 시장은 놓자니 깨지고 들자니 무거울 것이다. 그리고 한해가 시작되는 3개시의 통합 바람은 훈풍이 아닌 삭풍(朔風)처럼 차갑다. 이렇듯 6.2선거를 목전에 둔 이대엽 시장은 한해를 설계해야 하는 중심에서 많은 상념에 잠겨있을 것이다. 
 
一年之計는 在於春 이요 一日之計는 在於寅이라했다. 그런데 봄이 시작 된다는 입춘이 지난지도 월여가 된다. 그런데 정치권의 혼란과 자연의 현상은 春來春를 시샘하는 동장군의 심술인지 한 겨울 같은 눈발은 앞산을 덮고 있다. 또 뒤 산의 상수리나무도 덮었다. 
 
그리고 밭머리에 서 있는 대추나무와 담장 옆의 사철나무도 덮고 산마루를 지키는 향나무도 덮었다. 그래서 사방은 온통 흰눈 뿐이다. 그래서 상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산천을 뒤덮은 흰눈을 전부 치울 수는 없다. 
 
그래서 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전하의 어명만 받들다 사회로 돌아가는 대신들의 심정들은 어떨까? 정든 교실을 뒤로하며 교문을 나서는 졸업생 심정과 같을 것이다. 잘 있 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저희들은 물러갑니다.(중략)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질 머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이는 철석(鐵石)보다도 강한 약속이 담긴 초등학교 졸업식 노랫말이다. 특히 이 노래는 감수성이 예민한 초등학생들에게는 평생 동안 기억되는 노래다. 지금은 먹고 살기가 좋아져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어렵게 살았단 시절과는 사뭇 다르긴 하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어렵게 살았던 1930~70년대의 초등학교 졸업식장은 학생도 울고 선생님도 울고 학부모도 눈물을 훔치는 울음바다였다. 그래서 60~80대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이 노래를 부르며 울거나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듣노라면 지난 세월에 대한 애증이 교차된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만은 변함이 없다. 이 시절에 불렀던 졸업식 노래는 백설처럼 깨끗하고 순수했다. 
 
그리고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다는 작금과는 사뭇 달라 학생도 선생님도 전부 순수했다. 그래서 정든 교실을 떠나고 선생님과 혜여지기 싫어서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인 울음이 나왔을 것이다. 당시는 너나할 것 없이 주위를 보듬었다. 그리고 스승은 제자를 자식같이 여기고 제자는 스승을 부모같이 공경하고 존경하는 순수한 사랑과 진심뿐이었다. 
 
그리고 가정방문이라는 이름으로 선생님과 학부형들이 만났었다. 학부형이 선생님을 만나 첫 부탁은 매를 들어서라도 사람을 만들어달라며 허리를 굽혔다. 그러면 선생님은 학생에 대한 온갖 칭찬으로 학부형을 안심시킨다. 그리곤 이런 저런 이야기로 학생의심성이나 가정환경을 파악한다. 
 
지금 같으면 매라는 말은 상상도 못할 이야기다. 세상이 많이 바뀐 지금에 그 시절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리석음이 전부일 수 있다. 똑같은 초등학교 졸업식노래인데도 작금의 졸업식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당시는 왜들 그리 울었는지를 모른다. 세월이 변하는 길목에서 생각하니 지난세월이 그립기만 하다. 달라진 풍경이 어찌 이 뿐이던가? 
 
이런 과정을 지나고 들어선 공직의 세계는 어떤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라는 대목은 녹이 슬고 구멍이 났다. 그래서 노랫말이 담고 있는 미덕은 사라진지가 오래다. 앞에서 끌어준다던 것은 앞에서 끌어내고 뒤에서 밀어준다던 것은 뒤에서 밀어내고 있는 곳이 공직사회다. 
 
한때는 고참이 우대를 받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좋은 일은 항상 고참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참을 퇴참 이라고 한다. 참으로 씁쓸한 현실이다. 고참을 너무 무시하지 말라. 신참과 고참은 화덕속의 연탄불과 같으니라. 며느리가 늙으면 할머니가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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