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의 편지를 띄우다니!  
통합진보당 당원게시판에 띄운 간첩 장민호의 편지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6.15 09:12 |

충격이다. 12일 민주노동당 간부 300여명의 명단을 이북에 넘겨 옥살이 중인 간첩 장민호가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통합진보당 당원게시판에 게재되었다. 취지는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동지들"(?)이라며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편지들은 국민들로부터 'n-1'의 신세로 전락된 당권파를 묶어세우기 위한 지령으로 봐도 무방하다.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유는 당내 부정선거와 종북문제를 핵심으로 하는 통합진보당사태에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되는 간첩이 사태에 개입했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간첩이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당권파를 지켜내야 한다는 편지를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과 그것을 공론장에 띄운 것은 효과 면에서 엄연히 다른 것이다.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결코 입증되거나 논증되거나 분석되는 것이 아니다. 편지는 그 사밀성으로 인해 교시되고 주장되고 설파되는 식으로 이용될 수 있는 형식이다. 내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타일, 분위기, 극적 효과에 의해 힘을 얻기 때문이다. 다른 편지도 아닌 옥중 편지다! 시리즈다! 극적 효과를 노렸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따라서 편지들의 공개는 역으로 당권파를 묶어세우기 위한 지령을 내리기 위해 옥중 간첩이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보낸 편지 형식을 이용했다는 의심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누가, 어떤 의도로 이런 충격적인 행위를 감행했는지 우선 밝혀져야 한다. 간첩의 일련의 편지들을 당원게시판에 띄운 '플랫폼'이라는 당원에 대한 확인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성남미디어 마인황 칼럼니스트   ⓒ수도권타임즈

편지들의 공개는 '제도정치'의 파괴다. 그보다는 통합진보당사태로 불거진 주사파를 겨냥해 국민들이 주인인 '공론정치'의 파괴다. 따라서 편지들에서 말하는 것을 뒷받침하는 어떤 인식틀이 이북의 그것과 얼마나 유사한지도 동시에 확인될 필요가 있다. 이 유사성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편지들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밝힌다.


첫 번째 편지에서 거론한 '1930년대의 민생단(일제가 조작했다는 반혁명간첩단체) 사건'이다. 당권파를 '고무'하기 위해 '역사적 근거'로서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가 영도했다는 반민생단투쟁을 바로잡는 투쟁을 상기시킨 것이다. 당권파가 반당권파를 군사독재정권에 비유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주목을 요한다. 이북은 이렇게 선전하고 있다.


"죄없이 민생단으로 몰리는 동지를 동정하는 기색만 보여도 혹독한 박해가 뒤따르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누구도 이를 바로 잡기 위한 투쟁에 나서지 못했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북만원정에서 돌아오시자 1935년 봄에 다홍왜회의와 요영구회의를 소집하고 종파분자들의 책동을 분쇄하기 위해 반민생단투쟁을 바로잡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전개하시었다."


두 번째 편지에서 거론한 '니체 비판'이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과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니체를 통해 당권파를 비판하는 자유언론들을 매도하기 위해서다. 아니 국민들이 중심에 선 '공론정치'를 분쇄하기 위해서다. 간첩이 말하길 "히틀러가 가장 존경하고 참고한 인물"의 사유, 즉 '괴물'의 사유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니체의 사유는 이후 푸코(담론이론), 사이드(오리엔탈리즘) 등에서 정교하게 나타난 '적과의 동일시 메커니즘'을 밝힌 선구적인 사유다. 이항대립주의적 구도 속에서 적과 동지를 대비시키는 사상과 실천이 그것을 배우고 익힌 자들에 의해 수없이 반복됨으로써 결국 자신들에 의해 재생산되어 완고한 사상이론적 틀을 형성한다는 것을 폭로한다.


주체사상의 특징은 다른 모든 철학을 '선행철학'이라며 '배척'하거나 '우열관계' 속에서 파악한다는데 있다. 주체사상에서 니체의 사유는 무정부주의적 경거망동과 패덕주의라며 진보를 부정하는 '반동적인 사상'으로 배척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선행하는 노동계급의 철학'이라며 우열관계 속에서 파악된다. 천박해도 이렇게 천박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철학'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철학을 이데올로기화한 것에 지나지 않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한다. 혁신, 완성과 더불어 마르크스주의의 '계승'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주의와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주체사상이 마르크스주의의 변종에 지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괴물이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마르크스주의의 파탄은 검증되었다. 이북의 급속한 쇠퇴와 함께 주체사상도 이북, 조총련, 주사파를 넘지 않는다. 주체사상이 세계적으로 번역되지 않는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주의도 더 이상 아니다. 반대로 마르크스, 니체의 사유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번역되는 사유라는 점이 주목되어야 한다.


세 번째 편지에서 거론한 '무조건적인 단결과 투쟁보다 더한 성찰과 혁신은 없다'는 주장이다. "저들(적)에게 넘겨줄 뻔한 소중한 동지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다. "민족자주, 진보세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지칭된 당권파는 이석기의 '당원 총투표'라는 전술방침의 제시 이후 지금까지 '단결과 투쟁'으로 스스로 'n-1'의 길을 걸어왔다.


이 길은 고립과 자멸의 길이다. 이 점에서 '무조건적인 단결과 투쟁보다 더한 성찰과 혁신은 없다'는 주장은 당권파가 비당권파는 물론 국민들을 향해 '우리는 남이다'는 공개적인 '권력정치 포고'다. 역으로 그것은 비당권파, 국민들로 하여금 '그래? 너희는 비당권파, 국민들과 남이다'고 확실히 알게 해준 당권파 특유의 권력정치 포고에 지나지 않다.


당권파를 가리키는 "민족자주세력"이란 것은 주체사상에서 나온 레토릭이다.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주체사상은 '민족', '자주'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민족이라니? 이 땅에서는 불과 100년 이전에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은 없었다! 자주라니? 이북과 '내전'을 겪은 남한에서 "종미가 더 문제"(이석기)라고 떠드는 것이 과연 자주인가!


간첩의 편지에는 경기동부연합에 대해 "성남시 일대의 빈민, 재개발 지역에서 얼마나 헌신적으로 투쟁하며 살아오셨는가"라는 특기할 만한 표현이 있다(두 번째 편지). 그러나 그 운동의 실상은 의심스럽고 그 귀결은 야합의 선거정치였다. 김부선스캔들이 따라다니는 이재명을 시장으로 밀고 수치도 모르고 성추행 전력자를 땜질한 김미희의 출전이었다. 


편지에는 이북의 3대 권력세습에 대해 "대(代)를 이은 선군(先軍)정치 역량의 증대"라는 간첩의 자부심도 표현되어 있다(세 번째 편지). 이만하면 간첩을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통합진보당에 이르기까지 진보정당 내부에 끌어들이는 남한 내 주사파의 실체를 충분히 확인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부적절한 모방인 종북주의보다 심각한 문제다!


간첩의 편지를 공당의 당원게시판에 띄우는 사태는 비상한 것이다. 주체사상이라는 이북의 체제이데올로기에 입각해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한 지령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 의심과 더불어 '벼랑끝 전술'을 구사해온 당권파의 일사분란한 '단결과 투쟁'에 이 땅의 자유언론들이 각을 세운 니체의 사유를 반복, 온전하게 반복해둘 의무감을 느낀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대가 오랜 동안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선악의 피안》)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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