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의 블랙박스  
주사파 의원들을 말한다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6.12 17:27 |

"계엄정권 아래의 군사재판도 이렇게 졸속으로 하지는 않는다."(이석기,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당기위원회의 이석기·김재연·조윤숙·황선 제명 결정에 대한 6월 7일 언론 인터뷰)


"이번 결정은 독재정권의 사법부에서나 있을 법한 정치적 살인행위다."(김재연·조윤숙·황선, 7일 기자회견)


"조중동, 새누리당을 비롯한 공안세력은 통합진보당을 없애려는 희대의 정치공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말려들지 않으려면 혁신비대위와 당기위가 당의 단합과 단결을 도모해야 함에도 당 내분을 더욱 격화시키는 결정을 한 것은 유감이다."(김선동, 7일 논평 일부)


"지난 5월 13일 '혁신비대위'가 들어선 이후, 4명의 의원과 비례후보들이 이미 1심에서 제명되었고 거기에 더해 13명을 더 제명하겠다니, 당내 군사정권이 들어선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다."(김미희, 9일 당원비대위 대변인 논평)

 

» 성남미디어 마인황 칼럼니스트   ⓒ수도권타임즈

주사파 의원들이 말한 것이다. 공통점이 발견된다. 통합진보당 혁신비대위, 당기위의 제명 결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것을 군사독재정권에 빗대면서 매카시즘에 말려든 행위라는 것이다. 친구를 적으로 돌렸다. '적대의 정치학'을 적이 아닌 친구에 투사한 것이다.


혁신비대위, 당기위의 제명 결정은 적의 행위인가. 아니다. 그것은 통합진보당 내 부정선거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국민이 원했기 때문이다. 당은 당원에 기초함과 동시에 국민에 기초한다. 그러나 주사파 의원들은 보다 근원적 사실인 후자를 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실은 이 지점이 주사파 의원들에 대한 국민적 의혹의 핵심이다. 정당은 정당에 대한 정당이다. 국민을 놓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주사파 의원들이 이 제도적 상식을 짓밟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혹시 일당독재를 꿈꾸는 전위당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들이 구사하는 레토릭은 놀랍다. 습관적이다 못해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말해질 때 그것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레토릭을 입힌다. 이런 의미에서 레토릭은 말해지는 것과 분리되지 않는다. 언어란 본래 그런 것이다. 누구도 이것을 피해갈 수 없다.


언어를 포함한 문화는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건이 아니던가. "배고픔은 배고픔이지만, 요리된 고기를 포크와 나이프로 먹어치우는 배고픔은 손이나 손톱, 이빨을 사용해서 날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배고픔과 다르다."(마르크스, 《정치경제학비판 서설》)


따라서 이들의 천편일률적인 레토릭은 단순한 레토릭의 문제일 수 없다. 반대로 이들의 언어, 문화를 지배하는 어떤 '집단적 내면'의 변주곡이 아닐 수 없다. 그 상대로 군사독재정권이 거론되고 있지 않은가. 그것에 대립하는 이미지는 당연히 투사가 아니겠는가.


이것은 '군사독재정권 대 투사'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대립구도다. 이것이 바로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지탄에도 불구하고 ‘침묵’, ‘돌려말하기’를 섞으며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는 주사파 의원들에 대한 놀라움의 원천이다. 이들의 시계바늘은 80년대에 멈춰서 있다!


이 멈춰선 시계바늘은 '시대착오 그 자체'다. 80년대 이후(풍부해진 '이후')가 주사파 의원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들이 매카시즘을 들고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문제거리로 떠오른 것은 매카시즘 때문이 전혀 아니다.


주사파 의원들이 보려 하지 않는 것, 바로 국민이 전면에 나선 '공론정치(politics in the public realm)'를 통해서다. 대의정치에 한정된 '제도정치(institutional politics)'와 다른 것이다. 이들이 군사정권, 매카시즘을 들먹이는 것이 '수작'으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사파 의원들의 영수가 아니냐는 착각이 들게 하는 이석기가 지난 5일 국회 첫 출근에서 "정의감으로 불타는 20대 운동권의 심정으로 일하겠다"는 말을 했다. 이 말에서 그려지는 그의 '자화상'은 투쟁에는 익숙한 반면 공론정치에는 벽창호인 그것이 아닐까. 


'정의감으로 불타는 20대 운동권의 심정'이라는 말에는 어떤 형용모순이 숨어 있는 것 같다. 20대 운동권이 정의감만으로 해소될 수 없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주사파'라는 그 무엇이 그것이다. 더욱이 그는 주사파에 뿌리를 둔 민혁당 출신이 아닌가.


주사파와 이북 사회주의독재정권과의 사상적·정치적 의미연관은 지난 80년대에는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국민적 투쟁이 드리운 그늘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것이 통합진보당 당내 부정선거와 주사파 의원들의 국회 진출로 수면 위로 급부상한 것이다.


주사파 의원들의 벼랑끝 전술은 제도정치는 물론 공론정치를 위협하고 있다. 남북 대립과 통일이라는 현실과 이상의 이율배반(antinomy)을 모순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주사파는 군사독재정권과 싸우던 지난 80년대의 '블랙박스'인 셈이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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