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연 성남미협 지부장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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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타임즈 | 2016.01.16 19:20 |
2012-11-20 21:51:00 기사입력 | 류수남 ysn7675@hanmail.net     


[류수남 칼럼] 김보연 지부장이 얼마 전에 필자를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본란에 글을 썼다. 필자는 김 지부장으로부터 선생님이라는 호칭(呼稱)을 받을 정도로 고매(高邁)한 사람이 못된다. 그래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받기가 부끄럽고 거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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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부장은 필자를 오해하는 것 같다. 김 지부장은 필자에게 해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해명성 글을 썼다. 우리가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많은 말들을 하고 산다. 그런데 상대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 내가 한 말을 상대가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서로가 답답하기 그지없다. 또 말귀를 못 알아듣다보니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김 지부장은 필자의 글을 이해 못하고 오해하는 것 같다. 이는 필자가 글재주가 없어 상대를 이해시키지 못한 탓으로 돌리겠다. 
 
그러나 독자들이나 이해 관계자들은 김 지부장을 비아냥거린다. 필자를 보고 많은 독자들은 충고를 한다. 왜 점잖은 표현으로 글을 쓰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글을 쓰면서 상대를 최대한 존중한다. 또 글을 조폭이나 시정잡배(市井雜輩)들의 욕설이나 이기주의자들이나 데모꾼들이 하는 막말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쓴다. 
 
그래서 존중하다보니 독자들로부터 충고를 받는다. 그래서인지 김 지부장도 필자의 글을 이해 못하는 것 같다. 필자는 당시 지역 예술인들의 여론을 전달하고 오해의 소지나 의혹 부분을 전달내지는 제기했었다. 그러면서 의혹이 있다면 해명하고 오해가 있다면 풀어서 지역이나 예술인들끼리의 화합을 주문하고 시정의 불신을 막자는 논조였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속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갈아 신었으며 전기료와 건강보험료도 냈다는 등 구차하게 느껴지는 설명을 했다. 속옷이나 양말은 급하면 승용차나 화장실에서도 갈아입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자동차가 있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또 전기료는 주야를 가리지 않고 사용한 만큼 내는 것이다. 
 
필자는 전기료나 보험료 등 공과금 정산에 대한 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금년 같은 무더운 여름을 지하실에서 지내느라 에어컨이나 선풍기사용은 불가피했을 터인데 전기료는 얼마나 나왔나요? 만약사용 안했다면 믿을까요? 또 미 협일을 열심히 하고 배우기 위해서 주소를 서현동에서 사무실이 있는 정자동으로 옮겼다고 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서현동과 정자동은 같은 관내가 아닌가? 그리고 이제는 미 협행정이 자리가 잡혀서 다시 서현동으로 주소를 옮겼단다. 김 지부장의 설명이 사실일수도 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치사한 변명과 모든 이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 드릴수도 있다. 
 
김 지부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난 3일 끝낸 모란현대미술대전에서 전직 지부장이나 간부가 미 협 행정에 왜 강한불만들이 나오는가? 또 코리아 디자인센터에서 지난10월 17일 끝난 성남 미 협 전의 도록상의 일자와 시민들에게 알리는 홍보일자가 각기 달랐다. 그래서 전시장까지 갔다가 헛걸음하게 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정이 이런데도 미 협 행정을 배우기 위해 사무실에서 기거를 했다고?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 이래서 치사한 변명으로 들리고 솔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김 지부장의 구차한 설명(?)보다는 담백한 설명이었으면 좋았다. 
 
김 지부장은 글에서 필자의 글 중에 훌륭한 작가라는 대목에 고맙다고 했다. 이렇듯 김 지부장의 작품처럼 훌륭한 색감과 화려한 색상처럼 아름다운 해명 이었으면 좋았다. 그러나 필자의 바람과는 거리가 먼 글이었다. 
 
성남미협 사무실 주소가 한때는 정자동 45-6호 였 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옆 건물로 이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적서 작성 당시 주소는 어딘가? 45-6인가 아니면 현재의 건물주소인45-X호인가는 밝히지 안 했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되고 실망스러웠다. 차라리 구차한 설명보다는 시민들이나 예술인들이 오해한다면 사실여부를 떠나 치사하게 변명하기 싫다며 예술상을 반납하겠다고 했으면 작품만큼이나 훌륭한 작가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성남시정도 신뢰를 얻고 말이다. 
 
성남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나 문인들은 시로부터의 예산지원과 각종상의 수상부분은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다. 김 지부장이 성남의 화가라니 잘 알 것이다. 그리고 주소까지 옮겨가며 일을 배웠다니 잘 알 것이다. 
 
성남에는 성남시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고 특히 수상(受賞)하고 싶어 하는 예술인들이 많다. 이는 누구를 오해하거나 감정으로 치부하고 무시할 할 사안이 아니다. 그리고 변명할 사안도 아니다. 그래서 해명이나 사과는 필자에게 할 것이 아니었다. 
 
성남시예술인들을 포함한 시민들에게 했어야 했다. 그리고 성남시와의 관계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예술행정의 감독기관인 성남시에 해야 했다. 많은 예술인들과 시민들은 성남시와 김 지부장을 지켜보고 있는데 필자에게 했다. 그래서 김 지부장을 포함해 독자들에 대한 예의상 답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김 지부장의 글을 보면 취재과정에서 왜 거주지문제를 질문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당시에는 이미 예술상 수상자로 발표가 된 상태로 무용지부장의 지적처럼 추천자가 누구냐는 여론이었다. 주거지 문제는 수면위로 뜨지 안했던 때이다. 그래서 질문할 필요가 없었다. 또 기사를 본 후에 전화를 했으나 꺼져있고 받지 안했다고 했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필자가 김 지부장의 전화를 의도적으로 피한 것 같이 들린다.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온 독자들도 있었다. 이는 안 받은 것이 아니라 통화가 안 된 것이다. 또 1993년부터 수내동에서 살기 시작해 미협 임원이 되기 직전에는 서현동에서 살다가 미 협 지부장이 된 후에는 봉사와 행정을 배우기 위해 정자동 미 협사무실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속옷도 갈아입고 양말도 갈아 신었다고 도 했다. 또 세탁은 보름에 한번 쯤 화실에 가서했다고 했다. 또 주민세도내고 전화요금, 전기세, 건강보험료도 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의 잠자리는 서현동이라고 했다. 그리곤 화실에서 피곤하면 잠잘 권리가 있고 또 광주시민이나 광주 미 협 회원이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많고 적고를 떠나 성남시가 지원하는예산과 미협 공금으로 살림살이를 했다는 얘긴데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왜 안했나? 
 
성남예술인들은 김 지부장이 살았다는 미 협 사무실은 사람살기가 힘든 지하라는 것이 예술인들의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지난여름에는 폭염과 열대야로 시원한 산속에서도 지내기가 어려웠던 여름이었는데 무덥고 물이 차는 건물지하사무실에서 살았다니 잘 이해들이 안 되는 모양이다. 
 
특히 공기 좋기로 이름난 오포읍 능평리 산속에 좋은 집을 두고 과연 살았을까? 이래서 믿으려 하지 않는다. 단문해서인지 필자도 냉큼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눈보라만큼이나 혼란스럽다. 
 
필자는 이글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김 지부장이 봤는지는 모르나 상을 반납하라, 건물대장을 공개하라. 또 문화상을 수상한 김보연 지부장에게 축하해주라 또 실명으로 글을 써라 등등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또 일부에서는 김 지부장이 작가로서 성남에 남긴 족적과 행적에도 토를 다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의견들에 대해 김 지부장을 포함한 성남시는 침묵하는 예술인들의 의중을 현명하게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개인이나 조직이나 누구나 잘못은 있을 수 있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고치면 되는 것이다.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는 것은 흉이 아니다. 오히려 당당하고 존경스럽게 보인다. 
 
그리고 지도자는 담대한 리더십이고 개인이나 조직은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知慧)로 발전의 초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전례가 될 것을 우려해무시하거나 망설이면 이는 씻지 못할 오점이며 퇴보로 가는 지름길이다. 
 
성남시와 예술인들에게 바란다. 앞으로는 상 받고 바보 되는 예술인이 되지 말라. 그리고 시상하고 욕먹는 시장이 돼서도 안 된다. 특히 예술인들은 감투와 수상에 너무 집착 말라. 그리고 지부장 직을 포함한 모든 직책을 직업으로 생각지 말라. 직업으로 여기는 한 성남예술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민들의 혈세는 눈먼 돈으로 전락되며 감투 쓴 몇몇 사람만 살찌우게 하는 혈세의 낭비일 뿐이다. 
 
조직에서 이사와 감사의 기능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감투에만 연연한다면 이는 이 지역에서 활보하는 어느 짝퉁기자의 말처럼 모란시장의 개가 웃을 일이다. 그리고 개인은 물론 지역과 장르의 수치다.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투명과 양심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사비(私費)를 들여 지역이나 예술계를 위해 봉사하는 예술인들도 있다. 다만 그 숫자가 적은 것뿐이다. 우리가 세상살이를 하면서 남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행간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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