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모의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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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타임즈 | 2016.01.16 19:17 |
2012-09-19 10:50:00 기사입력 | 류수남 ysn7675@hanmail.net     


[류수남 칼럼] 필자는 월여 전 본란에 삼번아 잘 있 거 라 육(6)번은 간다라는 노인들의 탄식을 옮긴바있다. 이글을 읽고 몇 몇 독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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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면식도 없는 독자들이었다. 이중에는 대전에서 장묘 사업을 한다는 정 모 씨라는 독자의 전화도 있었다. 이 독자는 신문을 가지고 직원조회를 했다고 했다. 푸대접받는 노인들을 설득하는데 인용해 보라고 했단다. 필자에게 전화한 독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남의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의 현실이라고 했다. 
 
특히 애완견이 병나면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나 부모가 병나면 노환으로 생각한다는 애견병와(愛犬病臥)급주병원(急走病院)노친발병(老親發病)자위노환(子謂老患)이라는 대목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란다. 
 
그리고 열 자식을 키운 부모는 한결 같다는, 부모양자 일양십자(父母養子 一養十子)인데, 열자식은 한부모를 못 섬긴다는, 자염부모 십자일염(子厭父母 十子一厭)도 현실적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부모를 슬프게 하는 대목이라고들 했다. 또 죽은 뒤에 후회 말고 생전에 효를 하라는, 사후불회(死後不悔)생전진효(生前盡孝)라는 대목에는 자신도 부모님께 효도를 못 했다며 가슴이 뭉클한 대목이라는 독자들이 전부다. 
 
특히 장례 사업을 한다는 독자는 납골당(納骨堂)입구의 입석(立石)에 새겨진 부모님의 영전(靈前)이라는 글이 있으니 가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그 글을 보기위해 입석이 있다는 금산군의 현장까지 갔었다. 입석의 맨 위 줄에는 부모님 영전이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본문에는 “천만번 되뇌어도 아쉬운 이름이여„ “둥지 떠난 철새 되어 이제야 알듯 말듯„ “인자하신 그 얼굴이 자나 깨나 못 잊어„ “한번 떠난 부모님이 살아 올 리 있겠냐만„ “생전의 모습 비(碑)에 담아 “자자손손모시리라„ “소매 자락 부여잡고 투정부린 그 시절이„ “돌아서서 훔치시고„ “우시는 듯 웃음 짓던„ “부모님의 영전(靈前)에„“고개 숙여 비 옵니다„ “살아생전 못다 한 효(孝)„“두고두고 행(行)하리라„ “불효자식(不孝子息)용서(容恕)하시고„ “편하시게 쉬 옵 서소„라고 적혀있었다. 그래도 생전에 못 다한 효도를 늦게나마 하겠다는 다짐에는 고맙게 생각된다. 
 
이 입석에 새겨진 부모님의 영전이라는 글은 필자를 나무라는 글 같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식들 중에는 효자도 있고 불효자도 있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孝道)는 아무리 해도 부족한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남는 것은 불효에 대한 후회뿐이니 말이다. 
 
그래서 돌아가신 후에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는 아니라도 배산임수(背山臨水)에 전저후고(前低後高)하고 전착후관(前搾後寬)한 명당을 찾는 후손들의 발길이 분주한지모르겠다. 이렇듯 부모와 자식은 생전이나 사후나 뗄 수는 천륜이지만 자식들은 부모모시기를 꺼려하니 늙은 부모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수컷의 가시고기와 암컷의 문어처럼 살다 가시는 우리부모들은 무시 속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렇게 늙고 지치는 부모들의 탄식은 오늘도 그치질 않는다. 
 
이런 탄식을 담은 우스갯소리 한 토막을 적어본다. 아들 낳으니 일촌(一寸)이요. 사춘기 되니 이촌(二寸)되더라. 대학가니 사촌(四寸)되며, 군대 가니 팔촌(八寸)되고. 제대하니 손님되며, 결혼하니 사돈되더라. 애 낳으니 내나라 동포요. 이민 가니 해외동포가 되더라. 참으로 귀가 막힐 일이더라. 자식이 장성하니 부모마음도 달라져 딸 둘에 아들하나면 금(金)메달이요. 딸만 둘이면 은(銀)메달이고, 남매를 두면 동(銅)메달이더라. 그리고 아들만 둘이면 목(木)메달이요.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 그림자 되고,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더라. 
 
그래도 딸은 내 사랑이요. 자식들을 출가시키니 아들은 큰 도둑이고 며느리는 좀도둑이며 딸은 밉지 않은 도둑이더라. 며느리를 딸로 착각 말고 사위(壻郞)를 아들로 착각 말라. 나이 먹고 늙으니 당당 했던 기세는 간데없고 오는 것은 허망뿐이더라. 돈 있다고 위세 말고 배웠다고 잘난 체 말라. 건강을 자랑 말고 명예를 탐내지 마라.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늙고 병 들으니 남의 손 빌려 하루를 살더라. 그래도 살아있어 남의 손에 끼니 잇고, 똥오줌을 맡겨야하는구려. 내형제 내 식구가 최고인양 남들을 무시마라. 형제식구가 아닌데도 웃는 얼굴로 대해주더라. 이 노부모의 탄식(?)은 우리현실을 읽게 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넘기기는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 출생은 죽음을 발명했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지금 화장장이나 묘지를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석탄(石炭)백탄(白炭)타는 데는 연기만 퐁퐁 나는데, 이내가슴 타는 데는 연기도 김도 안 나고.... 북망산천이 얼마나 좋기에 꽃 같은 나를 두고 먼저 갔단 말이 오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북망산(北邙山)을 바라보는 노인들의 눈동자는 희미하고 입속의 탄식은 귓전을 스친다. 이런 탄식은 칠일(七日)을 울기 위해 칠년(七年)을 기다렸다는 늦여름(老炎)의 매미소리보다 더 처량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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