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관 스님이 산자에게 사세구(辭世句)를 전했다. 죽음에 임해 남기는 한 구절이 사세구. 원고지에 남긴 사세구라니…….
한 삶의 전부가 실려 있을 터. 그것은 마치 불투명한 블랙박스와 같다. 그저 읊조릴 뿐.
辭世를 앞두고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 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 팔십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 팔십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
無常肉身 開蓮花於娑婆 幻化空身 顯法身於寂滅 八十年前 渠是我 八十年後 我是渠
二千十一年 九月, 智冠 識
길다. 먼 저편 같다. 그렇게 읊조리고 있는 데,
"남녘이라 하루 종일 겨울비가 오네요, 형님!"
오랜만에 기별이 왔다, 출가한 아우님이. 납자의 기별은 산자의 한 구절로 들린다.
나그네라고 내 이름 불렸으면 첫 겨울비.
마츠오 바쇼(松尾芭蕉)
하로동선(夏爐冬扇), 그렇구나.
'인생 오십'이라 했던가. 여전히 삶은 끝없는 고뇌의 바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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