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와 성남시 부시장들의 들고 남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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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타임즈 | 2018.09.02 14:48 |



안양시와 성남시부시장들의 들
()고남()을 보면서.



사인(私人)이든 공인(公人)이든 들()고 남()은 분명해야한다는 것을 우리는 어려서부터 배웠다. 가정에서도 어린이들에게 들()고 나()는 인사법을 가르친다.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엄마 아빠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또는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라는 들고 남을 가르친다. 옛 어른들도 외출했다 돌아오면 헛기침이나 아니면 사랑채에서 담뱃대로 재 털이를 두드려 들고남을 알렸다. 속담에도 들고남이 분명치 않은 사람을 부잣집 머슴 나가듯 한다. 라는 속담이 있다.


이렇듯 들고 남의 표시는 생활의기본이다. 필부 같은 무식쟁이라면 무식으로 돌리지만 혈세로 운영하는 조직의 책임자인 공직자들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한동안 조직을 이끌었던 책임자들이 그 자리를 떠날 때는 남아있는 자들에게 들고남을 알리는 것이 예다.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부탁이나 덕담 또 귀감(龜鑑)의 명언을 남기는 예()가 이임식(離任式)이 아닌가.


또 새로운 사람이 와서 처음으로 대면해 포부를 밝히는 예()는 취임식(就任式)이 아닌가. 그래서 조직의 대소를 불문하고 들고 남을 알리는 기본적인 예()가 이.취임식(離就任式)이다. . 취임식은 여러 의미가 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떠나는 사람에 대한 아쉬움과 고마움. 또 한편으로는 부임 자에 대한 기대감과 그동안 못 다한 것이 있으면 후임자를 받들어 열심히 하겠다는 자기다짐의 기회가 될 수가 있다. 이런 들고 남의 기대와 아쉬움은 철부지 초등학생들의 졸업식 노랫말에서도 알 수가 있듯이 들고 남의 표시는 확실해야한다.


 70~80세대들은 기억하고 그때를 그리워할 것이다. 울음바다를 이뤘던 초등(국민)학교 졸업식장 광경을 말이다. 선생님과 재학생 그리고 졸업생과 학부형들이 엉켜 울음바다를 이뤘던 그 순수한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할 것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물려받은 책으로 공부 잘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잘 있 거 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 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그리고 정든 아우들과 정든 교실도 잘 있 거 라. 각박한 현실에서 생각하면 이 얼마나 순수하고 흐뭇하며 고마운 감성인가?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생자필봉(生者必逢)의 인간사회에서 들고 나는 표시는 기본예의다. 그뿐이랴.


눈알이 시뻘건 고스돕 판에서도 1go. 2go. 하며 들고 나는 것을 분명히 한다. 보자. 여기서 빛나는 졸업장은 명퇴 나 전근발령장이고. 아우들은 남아있는 조직원이며. 정든 교실은 청사고. 선생님은 주민이며. 냇물이 바다에서 만나 듯은, 생자필봉(生者必)逢奉)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고학력자들의 무식이 판치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 인격을 다스리지 못하는 학력은 무식이라 할 수 있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공직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들고 남을 알리지 않았던 중심에 성남과 안양시의 전직 부시장들이 있었다.


이들의 들고 남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주민과 부하 사랑의 깊은 뜻을 보는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시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후자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버릴 수가 없다. 봉황(鳳凰)의 뜻을 어찌 연작(燕雀)이 알 수가 있을까 만은 이해가 안 된다.


한동안 공생했던 동료들이나 앞으로 공생해야할 동료들에게 그렇게도 할 말이 없는가? 들고나는 이들은 남아있는 이들이 부러워하는 존재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모양새가 과연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나뿐 것인지의 판단은 각자의 생각과 서있는 위치 또 방향에 따라서 다를 수가 있다.


그러나 조직 관리를 책임지는 관리자의 언행과 들()고 남()은 관선이나 민선시대가 달라서는 안 된다. 옛날같이 길게 도열할 필요는 없어도 들고 남은 알려야한다. 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말아야 할 것은 들()고 남()을 알리는 것이다.


특히 국가의 록을 먹는 공직자는 더더욱 그렇다. 총알이 빗발치듯하는 전장에서도 지휘관의 들고 남은 분명했다. 휠체어나 구급차속에서라도 의식불명이 아니라면 들고남의 소리는 분명히 내야 한다.


앞으로 성남과 안양의 공직자는 물론 전국의 공직자들도 명심했으면 한다. 들고 나는 본인들은 자신들로 인해 바쁜 업무 시간을 뺏고 귀찮게 하 기가 싫어서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기우(杞憂)이자 자기 합리화라는 오해를 받을 수가 있다.


말석들은 부시장의 얼굴을 못보고 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감증명을 발급해주는 동직원이 부시장의 얼굴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임을 알아야한다.


또 남아있는 조직원들도 이 취임식을 귀찮아하면 조직원의 자격이 없음도 알아야한다. 두고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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