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를 모른다  
김미희의 중원구 출마, 어떻게 볼까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3.24 10:50 |

발가벗고 우뚝 선 남자 앞에서 여자는 고개를 돌릴 수 없다. 남자 앞에서 발가벗고 누운 여자는 상상할 수 없다. 이것이 인간이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부끄러움은 타자 앞에 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다."(《존재와 무》) 부끄러움은 타자의 시선 아래 놓인 자기 존재를 승인하는 것이다. 타자에게 보여지는 내가 누군지 강렬하게 의식하는 감응이다.


이제 어떻게 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이 나오게 되는지 분명해진다. 인간은 타자의 시선에 무감각해지면 무감각해질수록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타자의 시선에 의해 그려지는 자기 존재의 표상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으면 않을수록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인간 앞에서 사람들은 구토한다.

 

» 통합진보당 중원구 김미희 후보   ⓒ수도권타임즈

마침내 통합진보당이 김미희를 땜질용으로 내세웠다. 성추행 전력으로 후보를 사퇴한 윤원석 땜질용이다. 공당이 한 인격체를 땜질용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끼친다. 인간은 수단만이 아니라 목적이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땜질을 결정했고, 성남시위원회는 김미희를 땜질용으로 쓰는 것에 관여했다. 당 지도부도, 지역조직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김미희 땜질이 아니라 공식사죄와 무공천이 정답이었다. 그것이 공당으로서 중원구 야권 지지자들의 낙담과 좌절에 보상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답이었다. 당연한 이것을 왜 하지 않았을까? 민주통합당 야권단일후보 양보지역이니까 김미희 땜질? 이것은 당의 위도, 당의 아래도 "우리는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는 묵시론에 지배받고 있기 때문이다.


좋다. 당은 이미 부패했다 치자. 그렇다 해도 그것으로 김미희 땜질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집단으로, 패거리로 해소되지 않는 개인의 문제, 곧 김미희 자신의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베버가 갈파했듯이 어떤 집단도 그 자체로는 행위하지도, 자기를 유지하지도, 스스로 기능하지도 않는다. 개인의 문제, 실존의 본질인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김미희는 김미희이어야 했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행위나 사고에서 선택한다는 데 있다. 그 선택은 사물적인 인과성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삶의 특정한 문맥 속에서 그 선택이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선택에 의해서만 실존에 이르는 자유를 획득한다는 데 있다. 이런 이유들에서 김미희는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당의 결정을 거부해야 했다.


이미 그녀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그만 손을 뗄 때가 되었다"고. 이유도 분명히 말했다. " 20여 년에 걸친 오랜 세월 동안 선거정치로, 그것도 종목 안 가리고, 낙선을 밥 먹듯이 하며 인생을 다 보냈다. 이 사실에서 오는 느낌은 한 마디로 당혹감이다. 황당함도 없지 않다." 이 이유야말로 당의 결정 거부가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근거다.


끝내 마지막 기회를 김미희가 저버렸다. 이제 그녀에게서 보여지는 것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추한 몰골뿐이다. 보라! 언론에 대한 협박이다! "윤원석이 일부 언론에 의해 무차별적인 인신공격과 인간의 존엄이 유린당하는 참혹한 상황을 겪었다"며 "법적 대응 등 명예회복을 위한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무차별적으로 인신공격하고 인간의 존엄을 유린하는 사이비언론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싸워야 했다. 사퇴하지 말아야 했다. 일부 언론의 보도가 그런 것이라면 끝까지 비타협적으로 싸워 이겨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윤원석은 본인의 명예회복보다는 야권연대의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스스로 용퇴했다"? 이 무슨 헛소리인가!


보라! 야권단일후보, 야권연대 선봉장이란다! "야권단일후보로서 야권연대의 선봉장이 되겠다"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연대할 민주통합당 후보가 없다.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무슨 야권단일후보라는 것인가! 오히려 공식사죄하지도 않고 무공천하지도 않은 통합진보당을 유권자들이 심판하려 할 것이다. 무슨 선봉장이라는 것인가!


구토가 난다. 김미희는 부끄러움이 뭔지 모른다. 아니 수치가 뭔지 모른다. 우리는 인간이다. 여전히 수치를 아는 인간이다. 니체의 말이다. '"신이 어디서든 보고 있다는 게 정말이야?"라고 소녀가 어머니에게 묻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너무 무례하잖아!" 철학자들에게 힌트! 우리는 수치를 좀 더 존중해야 한다.'(《즐거운 지식》)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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