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선동가인가  
급했나 보다, 성남투데이가 또 쌌다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4.06 10:59 |

'야권단일후보를 찍자!' 언론은 이렇게 말할 수 없다. 편파시비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해서도 안 된다. 언론은 일방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찌라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복잡할 것 없다. 살아있는 권력을 심판하자! 진보는 단순화다. 지금 이 순간 정의는 부도덕한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다." 5일 성남투데이의 한덕승이 쓴 것이다.


"야권단일후보를 찍자!"는 주장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에둘러 말했다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언론은 일방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찌라시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동시에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자기를 인정함과 동시에 부정하는 모순된 주장이다. 한덕승은 하나마나한 주장, 마스터베이션을 즐긴 것이다.

 

» 성남미디어 마인황 칼럼니스트   ⓒ수도권타임즈

'복잡할 것 없다. 진보는 단순화다.'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진보는 단순화가 아니다. 진보든 보수든 단순화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경우는 그것을 이념 내지 교조로 받아들일 때만이다. 그것을 전에 '나는 반진보주의자다'라는 글에서 명확히 그린 적이 있었다. 그 때 보수든 진보든 그것이 이념적인 한 현실을 관념으로 대체하는 '정신의 질병'이라고 덧붙였다.


현실은 전혀 단순하지 않다. 반대로 너무 복잡해서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제한된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 깎아 말한 것이지만 좌파의 철학적 아버지인 헤겔조차 현실의 변증법이 관념의 변증법보다 풍부하다고 주장했다. 현실은 복잡하다. 현실은 어떤 측면에서도 특정한 영역으로 국한해서 말해질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현실은 '총체적'이다.


이에 대한 절실한 자각에서 이미 학문도 과거 분과학문들 사이의 경직된 벽을 허물고 학문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정치경제학, 혁명의 전략전술이라는 4가지 분석틀로 현실을 재단했던 좌파가 스스로 붕괴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지금의 좌파는 그 잔당들이라서 오리지날 좌파의 때도 못된다.


그런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사고 또한 마찬가지다. 가령 다리를 건너는 행위는 단순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동물은 그냥 건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그냥 건너는 법이 없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것이 인간이다. 그것이 사고하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인간의 사고가 이와 같은 것은 현실이 그것 이상으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정의는 부도덕한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다.' 곧 '지금 이 순간 정의는 야권단일후보를 찍는 것이다'는 주장이다. 언론이 당파의 기관지가 아닌 이상 언론은 이렇게 말할 수 없다. 편파적이어선 안 된다는 이유만이 아니다. 복잡한 현실의 문제는 단지 정권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삶의 질곡은 정권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이미 검증된 것이다. 정권을 통해서 삶의 질곡을 해결하려 한 시도들은 이미 역사로부터 심판을 받았다. 지난 100년의 역사가 준 가장 큰 교훈이다. 그런데도 좌파의 잔당들은 여전히 정권의 교체를 통해 뭘 해보겠다고 주장한다. 교체는 또 연장으로 바뀔 것이다. 그것이 복지론으로 무장한 사회민주주의다.


그들은 오히려 국가가 사회를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지 않는다. 국민이 사회를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지 않는다. 자본이 사회를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지 않는다. 서로 꼬리를 물고 몸을 섞는 국가-국민-자본의 보르메오의 매듭, 이 총체적인 현실의 구조와 운동이 이 지구에 전쟁, 환경재앙, 경제적 불평등을 가져오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보지 않는다.


이명박정권이 부도덕하다면 좌파의 잔당들도 부도덕하다('성추행 전력자' 공천을 생각해보라). 삶의 질곡을 과거의 좌파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문제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라. 그로부터 문명의 파괴, 삶의 고통, 살육은 참혹했다. 이것이 위험한 '국가주의'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좌파의 잔당들은 결정적인 '전향'을 단행하고 있지 않다.


좌파의 잔당들은 과거의 좌파들처럼 비합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바로 이 점에서 덜 폭력적이지만 결코 비폭력적이지 않다. 그들은 '폭력을 독점한 국가'(베버)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위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선거철만 되면 곳간을 습격하는 쥐새끼들처럼 나타나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보라!'고 선동하기 때문이다. 선동은 폭력이다.

 

여전히 좌파의 잔당들은 사고와 행위에서 폭력적이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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