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문제  
이석기가 의심스럽다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2.05.23 19:03 |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자멸의 길을 선택했다.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을 제3당으로 끌어올린 지지자들의 국민적 상식과 게임 규칙인 절차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의 길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지지자와 국민을 적으로 삼는 길이다. 지지율 폭락, 진보적 언론들의 태도변경으로 구체화된 최악의 여론 약화는 이들이 자멸의 길을 걷고 있음을 증시한다.

 

자멸의 길은 비당권파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권파가 국민을 상대로 싸운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이들의 비상식과 반민주성을 보게 된 국민들이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 비당권파에게도 책임을 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현실은 통합진보당의 탄생이 무원칙한 통합 또는 정파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정파적 모략의 산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악영향은 조만간 분당으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분열이 현실화된다면 그것은 유시민계와 같은 리버럴세력이 제외된다 해도 노동계급성을 기반으로 하는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가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최초의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사회주의정당인 민노당 창당일인 2000년 1월 30일 이전으로 진보정당 운동이 퇴보하는 것이다.

 

퇴보인 이유는 그나마 걸음마 수준의 보수 대 진보의 이념적·정치적 대립구도가 소멸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구도를 최초로 가능케 한 사건이 민노당 탄생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의 이번 총선 약진으로 진보정당의 외연 확대를 통해 도모해야 할 보수 대 진보의 이념적·정치적 대립구도의 내실화는커녕 오히려 구도 자체가 와해되는 것이다.

 

  ⓒ수도권타임즈

진보정당 운동이 와해된다면 그것은 거의 통합진보당 당권파에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의 한복판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석기가 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지지자들, 국민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가 제시한 당원총투표라는 정치방침에 따라 당권파가 조직적으로 국민들을 적으로 삼고 있고 이에 국민들은 경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석기에서 시작된 당권파의 정치방식은 대중정당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대중정당은 지지자 또는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방식을 쓰기 때문이다. 당권파의 방식이 비밀결사의 정치방식이 아니냐는 국민적 의혹대상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이석기는 이북과도 연계된 비밀결사이자 전위당인 민혁당 출신이기도 하다.

 

이석기는 민노당으로 하여금 통합을 추진케 한 주역이라고 자신의 입으로 밝힌 바도 있다. 따라서 국민들이 보기에는 그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강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를 숨어 있었던 실력자라고 가정해보자. 이 표현은, 그러나 다른 정당에서 쓸 수 있는 같은 낱말의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기원은 다른 정당과는 다른, 오히려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주사파이기 때문이다. 주사파의 성립은 이북의 주체사상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주체사상은 수령관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주체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다른 변종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바로 이 수령관에 있기 때문이다.

 

수령은 수령-전위당-인민대중이라는 운명의 공동체, 혁명의 정치적 통일체라는 차원에서 말해진다. 이 차원에서 전위당과 인민대중의 최고뇌수, 당과 인민대중 결집의 구심점이자 조직적 의사의 체현자이며 대표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단순한 논리, 이론의 차원이 아니라 체화해야 할 사상의식, 사상감정의 차원에서 말해진다.

 

이런 이유에서 주체사상에서는 수령을 이른바 탁월한 개인이나 영웅과 구분한다. 따라서 주체사상에서는 이 같은 지위와 역할을 가진 수령에 대한 혁명적 동지애와 배려, 헌신적 복무를 수령을 모시는 윤리로서 정당화한다. 당연히 개인숭배와 다르다고 말해진다. 이 역시 논리, 이론의 차원이 아닌 체화해야 할 사상의식, 사상감정의 차원으로 정당화된다.

 

이 같은 수령관의 실체는 김일성 일가의 대를 잇는 권력세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조선로동당 당대회의 묻지마 투표나 광장에서의 주민들의 열광적인 갈채로 표상되고 있다. 이런 표상들로 나타나는 이북의 권력세습은 다른 사회주의운동에서는 전례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것이 너무 낯설다. 핵심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남한에서의 정치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단위로서의 개인의 자유, 엄밀하게는 신도 넘볼 수 없는 단독자의 자유를 기초로 하는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것과 연관된 것으로 수령관과 이것을 핵심으로 하는 주체사상은 단독자의 자유를 전제하는 사회가 아니라 반대로 이런 사회의 부재를 전제하는 사상이론이기 때문이다.

 

단독자를 전제하지 않는 사회는 사회가 아니라 공동체에 불과하다. 당, 국가기구에 지배당하는 사회는 사회가 아니다. 공산당 일당독재가 지배하는 공동체에 지나지 않다. 수령관을 핵심으로 하는 주체사상은 그런 이북 경험의 산물이다. 단독자, 반독재투쟁, 자본제적 교환양식 등 다양한 시장사회의 경험을 통해 사회를 강화해온 우리와 맞을 리 없다.

 

주사파가 주사파인 한 이런 수령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지난 세기 80년대 민주화투쟁 과정 한복판에서 이 수령관을 놓고 이른바 NL계에서는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김영환의 주체사상 전파 이래 일어난 실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운동권 출신들은 이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사상은 살아 있는 것이다. 때문에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서 맞는 옷을 입는다. 수령관은 조직을 사상이론적으로 정치적으로 이끄는 지도자에 대한 존경, 충성으로 변용될 수 있다. 설령 수령관이 아닐지라도 혁명을 이유로 비밀결사나 그것에 전도체 역할을 하는 조직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높다. 어떤 행위도 정당화되는 것이 비밀결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암시는 된다. 일사불란한 행동이 그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그 일사불란함은 맹목적인 어떤 것일 수 있다. 가령 성남민노당이 또는 그 이중대인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가 오랫동안 시립병원설립투쟁에 올인해온 이유는? 성남민노당이 청소용역업체인 나눔환경을 설립해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밥그릇을 빼앗은 이유는?

 

나눔환경 대표 한용진, 시장 비서실 신건수, 중원구 후보 윤원석, 청소년육성재단 사무국장 김현경 등에서 보듯이 이재명 시장인수위에 성남민노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이유는? 정형주, 김미희가 현장에서의 진보적인 사회운동보다는 낙선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선거정치에 올인해온 이유는? 정형주에서 윤원석으로 중원구 후보가 갑자기 바뀐 이유는?

 

성추행 전력자 윤원석을 민노당이 전혀 걸러내지 못한 이유는? 김미희가 오히려 이 사실을 언론의 왜곡 때문이라고 호도하는 이유는? 진짜 야권연대라면 양보해야 할 중원구 후보 자리를 사퇴한 수정구 후보 김미희로 돌려막기한 이유는? 총선 시기 공개적인 나의 숫한 문제 지적에도 불구하고 김미희가 무대응으로 영어했던 이유는?

 

어째서 이석기는 트위터를 통해 좌장으로 김미희 선거에서 전략회의를 가졌다고 공공연히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과연 통상적인 선거홍보물제작회사의 개입 수준인가? 이런 물음들은 왜 나오는 것일까? 우리가 이성의 빛으로 이들을 비추어 보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로서는 국민들이 모르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 이 작용해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런 의문들로 인해 표면에 나선 자들과 보이지 않은 손 사이에 어떤 괴리도 느낀다. 이 괴리에서 전자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것은 마치 주사파의 원조 김영환이 전향 후 증언한 대로다. 수령을 모신 이북이 생기를 잃은 관료주의사회에 지나지 않다는 그런 유사사태일 것이다. 표면에 나선 자들이 우쭐해서 관성적으로 움직이는 그런 사태 말이다.

 

후자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노동자 출신의 미국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의 말을 적용할 만한 사태일 것이다. "미국의 공산당 지도자들이 노동조합운동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은 자유로운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을 이끌면서 공산당의 조직과 전술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그럴수록 이성의 빛을 더 밝게 비추는 일이다.

 

그러나 딜레마다. 대중정당, 대의정치에 한정된 그런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밀결사의 사상가들은 바로 비밀 그 자체를 이유로 그와 무관한 국민들로 하여금 불안과 위험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들의 이 감수성은 거의 모든 언론에서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듯이 조직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이북과 연계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주사파나 주사파에서 기원하는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지난 20세기 후반기가 시작되자마자 3년간을 이어진 비극과 참상을 과소평가한다. 아직도 이 땅에는 확실한 평화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현실에서 우선하는 것은 민족이 아니라 국가다. 대외적으로 국가는 국가에 대한 국가로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안보가 중요한 이유다.

 

진보진영에서 분단문제를 다룰 때 잘 말해지지 않는 것이 안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국가란 국가에 대한 국가이기에 국가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사회가 다른 국가로부터 방어되는 것이다. 국민적 의혹대상이 된 당권파는 이 문제에서 조금도 자유롭지 않다.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안보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증거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숨어 있었던 이석기가 출현하자마자 한 공개행동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당원총투표라는 정치지침의 제시로 당권파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석기가 의심스러운 이유다. 다른 하나는 이북에 대한 내재적 접근, 종미가 문제다는 그의 발언들이다. 이것은 분단현실에 개재된 안보문제를 완전히 외면한 것이다. 이 역시 이석기가 의심스러운 이유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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