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남 객설-촛불과 태극기는 내려놓고 일상으로 돌아가 반성해보자.(하)  
수도권타임즈(www.sntimes.kr)   
수도권타임즈 | 2017.02.06 09:29 |

촛불과 태극기는 내려놓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반성하며 기다리자.

주말집회가 일상이 돼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를 인정(認定)하고 섬기는 화합(和合)은 실종되고 갈기갈기 찢어진 사분오열(四分五裂)의 패거리들이 판을 친다.


민주주의 보다는 이기주의(利己主義)가 판을 치고 도덕성(道德性)이 실종된 막말들이 판을 친다. 대화 보다는 억지가, 준법(遵法)과 인내 보다는 떼 법과 욕설과 유언비어(流言蜚語)가 판을 친다.


지금 사회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꾸라지와 공()꾸라지 들의 억지와 블랙리스트 라는 낯선 용어들로 도배를 하고 있다. 이런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법률가의 법()꾸라지 또 공꾸라지의 블랙리스트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이들의 행위는 책임을 물어야한다. 그리고 이런 용어들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어져야 한다.


지금 사회를 도배하는 농단(壟斷)과 블랙리스트가 무엇인가?

이는 강자들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닌가? 힘없는 민초들은 상상도 못하는 용어(用語)들이 아닌가? 약자들은 이런 용어 자체를 모른다.


힘이 없으면 법()꾸라지 짓과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지 못한다. 이는 모두가 넥타이 맨 도둑님(?)들과 정치꾼의 전유물이다. 힘 없는 민초들이 들으면 모두가 속보이는 말질이다.


약자들은 억울함을 빗대는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소리만 안다. 농단(壟斷)이나 법()꾸라지 또 블랙리스트 작성은 힘 있고 법을 요리하는 강자들의 특허물이다.


주위를 봐라.

행정이나 의정을 제 입맛에 맡게 농단하며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농단 꾼이 어디 최순실 뿐인가?


행정이나 의정을 비판하는 기자는 혈세인 광고로 보복하며 지금 사회를 분노케 하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불이익을 주는 정치인들도 있을 것이다.


본인은 남을 비판하고 욕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쓴 소리는 귀 막고 보복하는 정치인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행위가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 작성 또 법()꾸라지 와 다를 것이 뭔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의 속보이는 말질들이 아닌가?


힘 있는 판검사나 경찰 그리고 정치인과 비서들이 무고(誣告)한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뉴스를 우리는 종종 본다.


힘없는 민초들은 택시비나 술값 시비를 못한다. 술값이나 택시비가 부족하거나 없으면 사정하다 밤을 새우거나 아니면 경찰관과 마주앉아야 한다. 또 폭력은 고사하고 언성만 높여도 경찰관과 마주 앉는다.


그런데 강자들은 주먹질과 욕설 또 고소부터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나.


대선을 목전에 두고 정치권의 편 가름이나 밀어붙이기, 또 억지와 막말들은 말로는 옮길 수가 없다.


서울의 광화문을 포함해 도처에서는 촛불과 태극기 행렬이 주말만 되면 죄()없는 하늘에 주먹질하며 고함(高喊)을 지른다. 그래도 하늘은 무언으로 인내한다. 민초들은 토붕와해(土崩瓦解=땅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는)로 한치 앞이 안 보이는 불행한 세상을 살고 있다.


권력의 맛은 꿀맛같이 달지만 달다고 많이 먹으면 백해무익한 니코친 같이 쓴 것도 권력이다. 바로 지금의 형국처럼 말이다.


권력 중독자들의 농단은 끝이 안보이고 성호사서(城狐社鼠)로 속는데 익숙한 민초들은 정신이 없다. 여기에 농단의 주역들은 책임을 전가하며 모르쇠로 일관한다니 혼란의 끝은 보이질 안는다. 우리 사회에는 성호사서의 만악(萬惡)이 춤추는 것은 내 탓이요 라며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부 정치꾼들의 숙달된 속임수와 임기응변(臨機應變)또 편협(偏狹)주의와 저질(低質)언행이 나라를 혼란케 하고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목전에 와 있다. 계란을 보고 닭을 구한다는 견란구계(見卵求鷄)의 세심함이 필요하다. ()


Copyrights © 2006 www.sntimes.kr All Rights Reserved
공감 비공감
twitter facebook kakaotalk kakaostory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