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의 양심과 관행 그리고 셀프디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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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타임즈 | 2018.09.06 08:17 |

예술인의 양심과 관행 그리고 셀프 디스()



관행이 법()과 원칙을 이길 수는 없다. 관행이 원칙이나 법규 그리고 모두와의 약속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주민과의 약속에 우선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런 관행들이 주민을 실망시키고 또 조직이나 사회를 오염(汚染)시키고 있다.



우리사회는 관행이라는 단어에 익숙해 있다. 그렇다 보니 관대할 때가 많다. 파장이 크거나 이해가 안 되는 문제가 터지면 이는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다며 책임을 회피하거나 모면(謀免)하려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번일도 관행이 원칙과 약속을 무시했다.



사전(辭典)은 관행(慣行)의 의미를 관례가 되어 내려오는 전례. 또는 되풀이해서 자주하는 것 이라고 적고 있다. 지난해 4.16일에 일어난 세월 호 참사의 책임소재를 놓고 관행이라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목숨을 앗아간 현장에서도 관행이라는 말들이 나올 정도라면 우리사회에 관행의 굵은 뿌리가 얼마나 깊이 박혀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물론 관행이 전부가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관행은 상대에 대한 겸손과 예의가 될 수 있다.



공원지기에 하는 인사나 비신도가 교회나 법당 앞에서 예를 올리는 것은 교법 이전에 몸에 밴 관행이다. 그래서 예의와 겸손을 나타내 타인의 사표(師表)가 되고 주위를 아름답게 한다. 반면에 원칙에 위배돼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에 혼란을 주는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그래서 혈세행사에 따른 사회와의 약속과 원칙이 안산 시처럼 관행에 묻혀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런 관행들이 안산뿐만 아니라 도처에서 성행되고 있을 것이다. 관행처럼 하는 자기 자랑이나 관행에서 탈피 못하는 낭비행사가 있다면 이는 빨리 시정돼야 한다.



이는 전국 어느 도시 어느 지역 예술인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사회는 창조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지역예술계는 창조의 가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성남 음 협은 예술창조는 고사하고 위상을 위해 동료예술인들을 수년 동안 속여 온 창조를 한 것 같다.



 이에 대해 성남 음협은 성남예술인들의 위상을 위해 책임을 저야 한다. 이런 것이 그동안 관행이었나? 그런데도 이런 거짓에 침묵하는 것은 혈세행사가 주를 이루는 성남예술인들의 수준과 자질을 의심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든 책임을 묻고 또 져야 한다. 그런데도 예총조직에서 중책을 맡았다. 철부지 자식의 잘못은 부모가 책임지고 학생의 잘못은 학교에서 책임지듯 음 협의 거짓은 책임자인 황 영기지부장과 박순심 부지부장이 져야 한다. 거짓말과 폭력과 막말은 이유 불문하고 어느 조직 누구도 정당화 될 수가 없다.



 또 붙박이예술인이나 세습예술인은 후진을 위해 뒤로 물러나라. 내가 아니면 조직이 문 닫을 것 같지만 절대로 그럴 리는 없다. 진정으로 성남예술의 발전을 원한다면 자리나 직에 연연하지 말라. 그리고 이끼긴 다식판행사에 얽매지 말고 번득이는 창조예술에 신경을 써라.



창조는 개인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또 내가 주위에서 떳떳하고 인정을 받을만한 예술인인가도 반성하라. 또 지금까지의 족적이 과연 떳떳했는지도 반성해보라. 그리고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버리고 비판이나 충고를 중히 여겨라. 물론 비판이나 충고도 나름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은 행간을 보면 알 수 있고 대화는 표정을 보면 알 수 가 있다. 그러니 양심을 갖고 봐야한다. 그리고 누구나 현직에서 물러났으면 전직에 목매어 예우나 혜택을 받으려 하지 말라. 전직과 현직은 구별이 돼야 한다. 충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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